파주 마장호수 + 기산저수지 연계 걷기 코스 추천: 출렁다리 & 둘레길
마장호수 제6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오른다.
젖은 흙냄새가 새벽 공기 속에 고요히 스며 있고,
밤새 쏟아진 비는 여전히 나뭇잎 끝에서 떨어져
투명한 방울이 되어 길 위에 흩어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 위로 방울이 터져
작은 울림을 남기고,
그 잔향은 숲의 심장 박동처럼
고요 속에서 은은히 번져간다.
계단을 따라 시선을 들자
천천히 커튼이 젖혀지듯,
닫혀 있던 풍경이 한 줄기 빛과 함께 열려 온다.
안개에 감싸인 호수는
아직 반쯤 꿈을 꾸는 얼굴이다.
흑백필름처럼 흐릿한 화면 속에서
물결은 잔잔히 숨 쉬고,
그 위를 구름의 그림자가 느릿하게 흘러간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호수의 고요와 내 호흡이 겹쳐지고,
시간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리게, 더 느리게 흘러간다.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안개와 햇살 사이로 길게 뻗은 출렁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물 위에 놓인 다리는 마치
두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아득하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안개가 흐르는 다리의 시작점은
빛과 그림자가 얽힌 문 같고,
그 문을 지나야 만 새로운 장면이 열릴 것만 같다.
발을 내딛는 순간,
다리는 가볍게 떨리며 나를 맞이한다.
미세한 흔들림이 발끝에서 허리, 가슴으로 번져 올라와
심장 깊은 곳에 감춰 두었던 두려움과 맞닿는다.
멀리서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온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Nuvole Bianche〉.
하얀 구름이 흘러가듯 부드러운 음이
안개 낀 호수 위를 감싸 안는다.
마치 내 안의 불안이 눈앞의 다리와 겹쳐
흔들림으로 형상화된 듯하다.
바람이 불자,
다리 아래 호수는 잔물결을 일으키며 빛을 흩어낸다.
그 빛의 파편들이 일렁이며 다리 위를 비춘다.
나는 그 위를 걷는다.
빛이 흔들리고, 다리가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리지만
그 모든 흔들림 속에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멀리서 새의 울음소리가 울리고,
안개가 걷히며 다리 끝에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그 장면은 마치 긴 클로즈업 후
천천히 줌아웃되는 화면처럼,
내 앞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된다.
흔들림은 나를 멈추게 하는 힘이 아니라,
균형을 가르쳐주는 느린 선율이었다는 것을.
다리 끝에 다가설 무렵,
안개가 걷히며 파란 하늘이 열리고
그 순간 음악은 변주하듯 환하게 터져 오른다.
시규어 로스의 〈Hoppípolla〉의 현악과 맑은 음이 겹쳐지며
마치 세상이 새로이 빛을 입는 듯하다.
나는 다리 위에서 음악과 함께 숨을 고른다.
흔들림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고,
빛과 소리 속에서 새로운 균형이 태어난다.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열리다
다리 끝에 다다르자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파란 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
호수는 하늘을 품어내며 끝없는 자유의 거울이 된다.
Sigur Rós – Hoppípolla 가 들려온다.
밝아지는 현악과 보컬이 세상이 환히 열리는 장면과
잘 어울리는 순간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얻은 깨달음
숲길과 데크길을 따라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니
내 발걸음은 이미 만 오천 보를 넘어 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호수는 내게 또 다른 얼굴을 내어주었고,
나는 그 얼굴 앞에서 균형과 자유를 배운다.
잔잔한 피아노가 여정의 끝과 사색을 감싸며 귓가를 흐른다.
호수는 고요를 지켰다
흔들린 건
언제나 나였다
호수 위에 드리운 마지막 빛이 잔잔히 흔들린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흔들림은 나를 두렵게 했지만,
결국은 균형을 가르쳐 주었고,
고요는 나를 멈추게 했지만,
결국은 자유를 열어주었다.
카메라는 천천히 멀어지며
호수와 숲, 그리고 하늘을 한 화면에 담는다.
그 풍경은 여전히 같은 모습이지만,
그 앞에 선 나는 더 이상 같은 내가 아니다.
“호수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언제나 나였다.”
화면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엔딩 크레딧처럼 오늘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호수 앞에서 나는 깨닫는다.
흔들림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결국은 균형을 가르쳐 준 또 하나의 길이었다.
니체는 말했다.
“깊은 호수는 언제나 고요하다.”
그 말처럼,
고요는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풍경임을
오늘의 호수가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