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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잡는 법

by 마르치아


가끔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독을 비춰보기 위해 우화 하나를 꺼내야 할 때가 있다. 사실 여부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오래된 설화도 아니고 그저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흔들기 위해 누군가 남겨둔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고독을 견디고 또 어떤 방식으로 고독에 무너지는지 생각하게 된다. 고독은 항상 인간과 함께 있지만 그 고독을 바라보는 방식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본능의 고독으로 더 깊이 내려가고 하나는 외부의 관계에 중독되며 자신을 잃어간다.


칼날에 동물의 피를 바르고 얼린다. 차갑게 굳은 피는 붉은 빛을 잃지 않은 채 단단한 표면을 드러내고 바람은 그 냄새를 먼 곳까지 실어 나른다. 늑대는 그 냄새를 따라 칼날 앞에 선다. 배고픔과 결핍과 욕망은 오래된 본능의 목소리로 울리고 늑대는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혀를 내민다. 차가운 얼음은 감각을 빼앗고 늑대는 자신을 지키지 못한 채 더 깊이 칼날을 핥는다. 상처는 벌어지고 피는 흐르고 늑대는 그 피를 자기 것이 아닌 듯 삼킨다. 얼어붙은 감각은 고통을 지워버린다. 늑대는 결국 자신을 갉아먹으며 무너진다. 칼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늑대는 스스로의 피에 취해 사라졌다.


나는 이 장면 위로 인간의 고독을 겹쳐본다. 인간의 고독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본능의 고독이다. 이 고독은 늑대의 고독처럼 외부를 모두 밀어내고 안으로만 안으로만 내려가며 세상과의 연결을 끊는다. 이 고독은 자신을 숨기고 스스로를 다치면서도 강한 척 버티려 한다. 감각이 잃어버린 자리에서 인간은 늑대처럼 자신이 흘리는 피를 구분하지 못하고 고립 속에서 더 큰 상처를 만든다. 이 고독은 파괴의 고독이다.


또 하나의 고독은 관계에 중독되는 고독이다. 이 고독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외부의 손길과 시선과 인정에 매달린다. 누군가의 눈빛 하나에 흔들리고 사라지는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작은 온기에 생명을 걸듯 기대를 걸며 자신을 소모한다. 이 고독은 타인의 반응을 먹고 자라며 자신을 잃는 고독이다. 이 고독은 본능보다 더 위험하다. 자신을 잃는 동안 그것이 파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계속해서 관계라는 칼날을 핥는다. 이 고독은 소멸의 고독이다.


한쪽은 고독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본능의 깊은 동굴로 숨어들고 한쪽은 고독을 감추기 위해 타인의 목소리에 중독된다. 그러나 두 갈래 모두 결국 같은 곳으로 향한다. 늑대가 자신의 피를 구분하지 못하듯 인간도 자신의 고독을 알지 못한 채 무너진다. 하나는 고독을 자존심으로 꾸미고 하나는 고독을 사랑으로 포장하지만 두 갈래 모두 감각이 마비된 자리에서 자신을 잃어간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늑대가 가지지 못한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멈출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고독을 살고 있는지 자각할 수 있다. 나는 이 피가 누구의 피인지 묻는 순간 고독은 더 이상 칼날이 아니다. 내 고독이 본능의 고독인지 관계에 중독된 고독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인간은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그 자각은 작고 희미하지만 인간을 살리는 빛이다.


본능에 휩쓸리는 고독은 늑대를 닮고 관계에 중독되는 고독은 그림자를 닮는다. 그러나 인간의 진짜 고독은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빛을 가진다. 아무도 필요하지 않다는 단호함도 누군가 없으면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출발했다. 인간은 사랑받고 싶어했고 보호받고 싶어했고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그 순한 마음이 왜곡될 때 한쪽은 늑대가 되고 한쪽은 중독자가 된다. 그러나 그 마음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다.


나는 이 두 갈래의 고독을 바라보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한다. 인간은 칼날 앞에서 무너질 수도 있고 관계 앞에서 사라질 수도 있지만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인간은 고독을 잃지 않으면서도 외부에 삼켜지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그 방식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선택한다.


나는 오늘도 고독을 피하지 않고 중독에 휘둘리지 않으며 천천히 하루를 시작한다. 인간의 고독은 늑대의 고독보다 넓고 관계의 중독보다 깊다. 이 고독은 나를 다치게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를 깨우는 힘이기도 하다. 나는 그 고독을 품고 살아가는 길을 걸어간다. 그 길은 천천히 나를 살리는 길이고 나를 잃지 않는 길이고 내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의 어느 조용한 지점에서 아주 미세한 빛이 어둠의 결을 가만히 흔드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인간은 늑대도 아니고 중독자도 아니고 칼날을 핥는 존재도 아니다. 그 순간 인간은 하나의 고독을 가진 하나의 마음으로 남는다. 나는 그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조금 더 조용히 앞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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