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포자와 탐욕의 온실

by 김경훈

진실은 결코 향기롭지 않다. 권력자들이 뿜어내는 탐욕의 악취는 그들이 아무리 값비싼 향수로 덮으려 해도 나의 예민한 후각을 속일 수 없다. 나는 눈먼 사설탐정 엘리야다. 빛을 잃은 대신 세상의 가장 은밀하고 더러운 이면을 냄새와 소리로 해부하는 사냥개다. 나의 곁에는 언제나 완벽한 공범인 안내견 탱고가 일정한 숨소리를 내며 걷고 있다. 나는 정의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부패한 악당들이 숨겨둔 썩은 고기를 가로채어 사랑하는 보보와의 평화로운 미래를 지키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사립 식물원은 거대한 인공 허파처럼 습하고 무거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굴지의 제약 회사를 운영하는 독고 회장이다. 그는 희귀 식물에서 신약 성분을 추출한다는 명분으로 전 세계의 온갖 기괴하고 치명적인 식물들을 이 거대한 유리 온실 안에 수집해 두었다. 어젯밤 이 식물원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특별 통제 구역에서 한 남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죽은 자는 독고 회장의 불법 리베이트와 신약 특허 탈취를 폭로하려던 내부 고발자 강 본부장이었다. 경찰은 강 본부장이 야간에 몰래 식물원에 침입했다가 희귀 독초의 독성에 우발적으로 노출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독고 회장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증명하고 경찰의 수사를 빨리 종결시키기 위해 나를 고용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무능한 시각장애인 탐정이 현장을 둘러보고 단순 사고라고 결론을 내려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는 오만하게도 나의 감각이 얼마나 날카로운 칼날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독고 회장의 비서가 이끄는 대로 탱고의 하네스를 잡고 식물원의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식물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습기와 함께 수만 가지 식물이 뿜어내는 복합적인 체취가 폐부를 찔렀다. 썩어가는 부엽토의 비릿한 흙냄새, 거대한 양치식물들이 내뿜는 푸릇한 수분, 그리고 열대 난초들의 짙고 관능적인 향기가 공기 중에 무겁게 섞여 있었다. 나의 청각은 유리 돔 천장에 부딪히는 인공 폭포의 물소리와 자동 분무 시스템이 뿜어내는 미세한 안개의 마찰음을 통해 이 공간의 거대한 입체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내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특별 통제 구역은 식물원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독립된 유리 온실이었다. 비서는 그곳이 독성 식물들만 따로 모아둔 맹독의 정원이라고 설명했다. 온실의 문은 오직 독고 회장의 지문과 홍채 인식으로만 열리는 완벽한 밀실 구조였다. 강 본부장의 시신은 온실 내부의 차가운 흙바닥 위에서 발견되었다. 외부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으며, 온실의 환기 시스템은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어 독성 가스가 외부에서 유입될 가능성도 차단되어 있었다.


나는 장갑을 벗고 시신이 있던 바닥 주변을 천천히 더듬기 시작했다. 축축한 이끼와 젖은 흙의 질감이 손끝에 닿았다. 강 본부장은 고통스럽게 몸부림친 흔적 없이 아주 평온한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나는 흙바닥에 코를 바짝 대고 온실 안의 냄새를 층위별로 해부하기 시작했다. 온갖 독초들이 내뿜는 알칼로이드 특유의 쓴 냄새 사이로 아주 미세하고 이질적인 악취가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은 썩은 아몬드 냄새와 오래된 핏자국에서 나는 비릿한 철분 냄새가 기괴하게 섞인 향기였다.


그 냄새의 근원지를 쫓아 고개를 돌렸을 때, 내 발치에 있던 탱고가 온실 구석의 환풍구 아래에서 갑자기 거칠게 재채기를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예민한 점막을 자극할 만큼 강력한 독성을 가진 미립자가 그곳에 잔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지팡이로 환풍구 주변의 흙을 살짝 파헤쳤다. 부드러운 흙 속에서 아주 작고 바스락거리는 껍질의 잔해가 만져졌다. 그것은 일반적인 식물의 씨앗이 아니었다. 열대 우림의 깊은 습지에서만 자생하며, 극도의 습도에 노출되면 수백만 개의 치명적인 독성 포자를 터뜨리는 희귀한 붉은 맹독 버섯의 포자낭 껍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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