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소음

비명을 먹는 미식가

by 김경훈

류는 대한민국 최고급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무거운 벨벳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았다. 대리석 테이블 위에는 육십 일 동안 건조 숙성된 최고급 한우 스테이크와 크리스털 잔에 담긴 이십 년산 싱글 몰트 위스키가 놓여 있었다. 류의 직업은 이름난 음식 평론가였다. 하지만 초능력 하향 평준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의 혀는 남들과 다르게 진화해 버렸다. 미각을 잃은 대신 식재료의 과거를 듣는 끔찍한 오디오 수신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종업원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물러났다. 류는 은빛 포크와 나이프를 쥐었다. 금속의 서늘한 촉감이 손바닥을 타고 올랐다. 그는 붉은 핏물이 살짝 배어 나오는 고기 한 점을 썰어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육질이 혀끝에 닿는 순간이었다. 그림 설명 고급 레스토랑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완벽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씹으며 고통스럽게 미간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남자의 창백한 얼굴과 땀방울이 맺힌 이마 그림 설명 끝 류의 고막을 찢을 듯한 거대한 비명소리가 두개골을 강타했다.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처절한 울부짖음이었다. 차가운 금속 바닥을 긁는 발굽 소리와 둔탁한 기계톱 소리가 류의 뇌수를 뒤흔들었다. 고기의 풍성한 육즙은 피비린내 나는 비명이 되어 귓바퀴를 맴돌았다.


류는 헛구역질을 하며 고기를 삼켰다. 고통을 잊기 위해 잔을 들어 싱글 몰트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오크통의 묵직한 향과 피트의 스모키한 풍미를 기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알코올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축축하고 서늘한 지하실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거대한 참나무가 베어지며 내지르는 거친 마찰음과 스산한 바람 소리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위스키의 여운은 향기가 아니라 고막을 때리는 자연의 아우성이었다. 아무리 비싸고 신선한 식재료일수록 그들이 살아있을 때 뿜어내던 생명의 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하게 류를 괴롭혔다. 유기농 채소는 흙을 뚫고 나오며 단말마를 질렀고 자연산 활어는 숨이 막혀 헐떡이는 끔찍한 소음을 냈다.


결국 류는 최고급 코스 요리를 그대로 남겨둔 채 도망치듯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류가 향한 곳은 미슐랭 식당이 아니라 골목 모퉁이의 허름한 편의점이었다. 그는 진열대에서 가장 싸구려 불량식품인 합성 착향료 포도맛 젤리를 집어 들었다. 천연 과즙이라고는 단 일 퍼센트도 들어가지 않은 완벽한 공장제 식품이었다. 류는 떨리는 손으로 비닐을 뜯어 젤리를 씹었다.


말캉한 질감이 치아 사이에서 부서지는 순간 류는 드디어 평화를 찾았다. 젤리에서는 어떠한 생명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일정하고 경쾌한 기계음만이 들려왔다. 그것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이자 잘 만들어진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릴 때 나는 완벽하고 건조한 타건음과 같았다. 어떤 고통도 슬픔도 없는 철저하게 통제된 인공의 소음이었다. 류는 입가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미식가는 그날 밤 편의점 구석에 쪼그려 앉아 인공 색소가 범벅이 된 젤리의 타건음을 밤새도록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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