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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Apr 23. 2024

성장 커브가 완만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지금 회사에서 배운 것

지금 회사는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이곳에 다니며 들었던 ‘성장 단상’에 대해 정리해두려 한다.


먼저 이곳에 오기 전, 내 성장 커브가 완만해졌다는 생각을 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느낌이 없자 직무에 대한 고민까지 찾아왔었다. 연차가 차서 배우는 재미가 없다면, 다들 어떻게 같은 직무를 오랫동안 하는지 궁금해했었다. 그리고 회사를 바꿔도 하는 일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생활용품 시장에 있든, 아예 새로운 카테고리에 있든 일의 본질은 비슷해서 초반 몇 개월은 새로운 인더스트리를 배우는 재미가 있지만, 일을 접근하는 방식은 같아서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여기나 저기나 똑같은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직하고 싶은 회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거나, 갈급하는 곳으로 가거나

이 고민을 선배들에게 했을 때 늘 성장할 수는 없지 않나, 이런 여유로움을 즐기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처음으로 해결책다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거나 갈급하는 곳으로 (내가 바꾸고 싶은 문제를 풀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작년에 이직할 때 나는 ‘배울 수 있는 곳’을 선택했었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이직 기준에서 단 하나만 추가했었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명확한 비전 제시를 하면서, 데이터로 의사결정 내리는 로지컬한 리더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런 조직이라면 높은 확률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기준에 따르면 회사 일은 빡셀 수는 있겠지만(맞았다. 아주 빡셌다), 더 오랫동안 경쟁력 있게 일하려면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 오고 깨달은 것은, 성장 커브가 완만해졌다는 것은 전혀 연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 성장을 지속하고 싶다면, 내가 있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였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어떤 환경에 놓이든 스스로 기준을 높이며 성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지난 1년간 배운 것

이곳은 단순히 매출목표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제를 늘 부여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들에서는 매출 목표는 높아지지만 이것을 구성하는 인풋에 대해서는 챌린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은 인풋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질문했다.

작년 4분기가 단적인 예인데, 이곳은 분기별로 OKR을 세우는데 두 번째 달만 되어도 OKR 내용이 이미 out-dated 되어 버릴 만큼 빠르게 성장한다. 10월에 홈 카테고리를 키우는 업무를 맡게 되었고, 4분기 OKR은 홈 카테고리를 키우기 위해 ‘홈 카테고리의 PDP (product detail page, 제품 상세페이지) 유입자 수를 얼마 이상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PDP 유입자 수라는 지표도, PDP 유입 수에 비하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데, 목표를 달성하려면, 중복값을 고려해야 했다. 예를 들어 A라는 고객이 15주 차에도 홈 PDP를 보고, 16주 차에도 홈 PDP를 보면 매주 모객한 유저 수 합으로는 2명을 모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월 기준으로는 1명을 모객한 것이기 때문에, 월별/주차별/일자별 PDP 유저수 중복값까지 고려해서, 월 목표를 1/4한 숫자보다 더 많은 유저가 주차별로 홈 PDP를 보도록 마케팅 활동을 계획했었다. 그리고 주차별로 월별 목표보다 더 많은 트래픽을 붓기 때문에, 구매전환율 목표 역시 월별/주차별/일별 목표 숫자가 달랐다.

그런데 11월이 되었을 때 대표님이 질문을 했다. 홈 카테고리를 구매하는 사람은 누구냐고, 홈 카테고리를 구매했던 기구매자가 계속 홈 카테고리를 보고 구매하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고. 한 번도 홈 카테고리를 사지 않은 고객, 이 고객은 또 2개로 나뉘는데, 우리 회원이지만 메인 카테고리인 패션 카테고리만 구매하던 고객이 홈 카테고리를 구매하는 경우, 아니면 우리 플랫폼에 회원가입하면서 첫 구매로 홈 카테고리를 구매하는 경우. 지금 우리 홈 카테고리의 구매자를 3개 그룹으로 나누었을 때, 1) 홈 기구매자, 2) 홈 미구매자&기존 회원, 3) 홈 미구매자&신규 회원으로 나누었을 때, 홈미구매자 그룹들이 성장하고 있는지, 홈미구매자 2개 그룹 중 어느 그룹의 헤드룸이 높은지 등을 묻는 것이다. 그리고 ROAS가 낮더라도 홈기구매자를 디타겟팅해서 제한된 광고비를 최대한 홈 신규고객을 확보하는데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지. 그런 논의가 시작된 이상, 우리가 10월에 시작했던 OKR, PDP 유입자 수를 얼마 이상 모객하겠다는 목표는 out-dated 된다.

그리고 홈 신규고객을 모객하는 것에 집중하여 11월을 열심히 보내고 있으면, 12월에는 이런 논의가 시작된다. 우리가 모객한 홈 신규고객이 우리가 미는 상품을 구매해서 모객되고 있는지, 그냥 다른 곳에서도 파는데 단순히 이번에 최저가가 맞아서 우리한테서 산 것 아닌지, 그런 고객은 재구매율이 낮을 것이지 않나 라는 논의가 시작된다. 그러면 고객이 홈 첫 구매로 산 브랜드 그룹별로 재구매율을 확인하고, 재구매율이 낮다고 판단되는 브랜드는 설사 그 브랜드가 신규고객을 잘 모객한다 하더라도 미노출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를 지난 1년간 해왔다.


내가 분명 과거에도 해왔던 일이지만 이 곳에서는 내가 받는 질문의 깊이가 과거의 나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깊이로 오고 있다. 그 질문을 듣고 처음 그 생각을 하고 대답하기 급급했었다. 그런데 일 잘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너무 잘 알아서, 내가 먼저 이만큼 고민해서 윗사람이 묻기 전에 먼저 문제제기를 하고 해결책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지 못해 괴로워했다.

그렇게 아주 괴로운 몇 개월이 지나면서 (지금도 괴롭지만), 아주 죽겠다 곡소리가 절로 나오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다 부서지고 깨지고, 나는 일을 제대로 해본 적 없나 의구심까지 드는 몇 개월을 보내면서, 내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몇 달간 성장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예전의 내가 생각했듯, 내가 알고 있었던 프레임워크, 큰 틀은 바뀌지는 않았다. 일을 할 때 why를 묻고 목적/목표에 맞게 일을 하고, look forward 해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그려보고, 그런 프레임워크는 바뀌지 않지만, ‘더 넓고 더 깊고 더 빠르게’ 상황을 고려하고 의사결정 내리는 일에 대해 계속 압박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매출액은 결과값일 뿐 무조건 쪼개서 인풋을 정의해야한다. 원래 알던 내용이지만 그걸 어디까지 쪼갤 수 있는지, 어디까지 인풋을 조정할지 그 깊이가 다름을 배웠다.

10개월간 썼던 노트 6권


링크드인에 신수정 님의 포스팅에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실력이 상승되려면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의도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약간 불안하며 두려우며 적절한 스트레스가 있을 때 사람은 성장한다.’고 했다.

신수정 님의 링크드인 포스팅


도대체 언제까지 성장해야 할까?

이직하고 처음으로 밤늦게까지 야근하던 날, 불 꺼진 아파트 단지에 택시를 타고 들어오며, 그리고 집에 도착해 이제 막 10개월 된 아이가 잠들어있는 것을 보며, ‘도대체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들었다. 초년생 때는 일을 배우느라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서, 피앤지를 다니던 3년은 새벽까지 야근을 하든, 주말에 일을 하든, 물론 힘들었지만, 내 동기들도 다 이러고 있었고, 3년 정도만 고생하면 그 이후부터는 성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질문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9~10년차가 되었고, 아이 엄마가 되었고, 3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새벽까지 일을 하고, 깨지고 혼나는 상황을 만나고 있어서, 도대체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밤이었다.

그래서 연차가 많이 쌓인 어른들이 쓴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요새 읽고 있는 신수정 님의 ‘커넥팅’을 보면, 최소 10년은 내가 나중에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모르니 성장하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대표님도 최소 40대 중반까지는 (내가 25살부터 일을 했으니 20년 차까지는 성장하라고 하신 거네 하하),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을 주머니에 쌓아야 한다고 했다. 인생은 기니까, ‘성장’이라는 기준을 더 오래 고려해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10년 20년 성장이라는 기준으로 일하다 보면, 그때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양질의 성장의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내게 지금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그동안 하던 고민들, 이렇게까지 해서 뭘 얻고 싶나? 등의 고민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지금은 오늘만 잘 보내보자고 다짐해본다.


이 글은 퍼블리에 ‘내 일을 키우면서, 업무역량을 강화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발행되었다. :)

https://publy.co/content/7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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