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문명 시대, 대화의 존재론적 위기
감정은 사이버 공간에서 맥락 없이 소비되고, 이해와 공명은 사라져버렸다.
우리의 생활환경속에서 인터넷과 SNS는 이전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통의 장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발전은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되고, 또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건강한 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대화의 가능성과 역량은 퇴보하고 있으며, 감정의 소비와 분노만이 확산되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SNS에는 방문한 음식점의 품질에 대한 불만사항부터 불친절 함, 시부모와의 갈등, 배우자와의 갈등 등 개인적 고충을 포함해 온갖 고발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분노가 넘쳐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명이나 합의가 아니라 감정의 분출이다. 당사자와 대상자의 개선 노력은 감정의 증폭 앞에 무력하게 된다. 이런 우리의 현실은 대화 능력의 현저한 쇠퇴를 고스란이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는 하이데거의 ‘공존’ 개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함께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현존재(Dasein)가 자신의 존재를 타자의 존재와 근본적으로 연관 지으며 ‘함께 존재하는’ 조건을 말한다. 이는 타자와 진정으로 관계 맺고 대화하며 삶을 조율하는 능력으로서 단지 같은 공간에 있음이나 정보 교환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공존으로서의 능력이 현시점의 과학시대에 눈에 띄게 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사이버 공간에서 맥락 없이 소비되고,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공명은 사라져버렸다. 파편화된 폭로와 분노의 연쇄 속에서 우리의 공동체는 그만큼 분열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는 존재론적 단절로서 심각한 실존적 위기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퇴화를 극복하기위해서 우선 감정의 과잉 소비를 멈춰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맥락과 타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타자를 적으로 보지 않으면서 진정한 대화를 회복하는 ‘공존 역량’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공동체 전체가 마주한 과제일 것이다.
과학기술이 제공한 대화의 가능성을 현실 감각으로 만들어 공존 역량을 회복하는 데 우리 모두가 책임있는 존재로 나서야한다. 분노와 감정의 소비, 그리고 서로의 단절이 아니라 이해와 관계의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나오는 공명이 가능한 사회를 통해서만 진정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