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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넥도트

초코우유

결핍의 흔적

by 투명인간

시끌벅적한 6학년 4반.

초록색 상자에 초코우유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그건 제 것이 아닙니다.


순서대로 배급을 받아

몇 초도 되지 않아 꿀꺽 삼켜버린 저는

빈 우유갑만 만지작거리며

아쉬운 눈빛으로 앉아 있습니다.


아, 역시나 부족합니다.

한 모금만 더 있었다면

세상이 잠깐 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 하나 남은 우유는

오늘 병원에 가서 아직 오지 않은

친구의 몫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눈길이 갑니다.

맨 끝자리의 시끄러운 녀석도

괜히 조용해져,

빈 갑만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손대지 않은 친구의 우유가

나를 아무리 유혹해도

늑대처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우린 그렇게 배우며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한 모금의 달콤함보다

내 안의 인간성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땐 믿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착함이 아니라

들키지 않으려는 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때의 나는 조금 더 사람 같았습니다.


아마도 인간성은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끝없이 욕망하면서도,

끝내 멈춰서는 마음.


세상은 늘 하나쯤

부족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모자람 속에서

사람은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그 포기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용서하게 됩니다.


아직도 가끔,

마시지 못한 단맛이

혀끝에 남아 있습니다.


그건 내 결핍의 흔적이자,

내가 여전히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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