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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맴맴 Feb 08. 2024

가족

모든 관계

가족이 되는 과정은 어려웠다.

다른 집문화를 존중한다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숙제나 다름없었다.


-

요즘 상담을 다니고 있다.

남편과 갈등(갈등이라 말하고 내가 힘든 것)으로 어찌어찌하다 보니 급하게 갔다.

난 우울도가 있는 편이었지만 당시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무서워서 갔다.

내 얘기를 듣고 연장이 필요하다 해서 상담을 연장했다. 5회를 끊었는데,

5회 만에 내가 괜찮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긴 했다.







두 번째 상담 때는 마음이 안 좋아졌고,

세 번째 때는 가벼워졌다.




상담하면서 알게 된 건,

내가 그동안 수많은 무시와 비교를 당해왔다는 것.

어릴 적에 겪었던 관계의 영향으로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것.

내 인생 상담을 친구에게 했다는 것.

그리고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이 

내 진짜 모습일 거라 받아들였다는 것. 



나의 믿음이 친구보다 없다고 비교했던 목사님. 

나를 위한 거라 말하면서 자신을 위한 요구를 했던 지인들.

그리고 요구를 쉽게 들어주지 않는 나에게 고집스럽다며 못 말린다는 듯이 쳐다봤던 시선들. 

그리고 그 시선이 나라 생각했던 것.


모든 것이 '나'이면서도 거짓이었다.


나의 고집스러움보다 친구 자신의 고집은 보지 못했고,

친구의 요구를 섣불리 들어주지 못하는 나에게 말은 기다려준다고 했지만 한숨을 쉬며 안타깝게 쳐다보는 것이, 나를 기다려주는 태도는 아니었다.(나는 이 부분으로 친구가 요구하는 걸 들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믿음은 비교대상이 아닌데도 내가 아무리 신앙생활 열심히 해도 나는 친구보다 믿음이 없구나로 나를 가둬버렸으며, 진짜를 찾았지만 진짜를 말하는 공동체는 없었다는 것.


상담사분은 내가 '진짜'를 찾고 싶고 의심 없이 믿고 살고 싶어 하는 정서적 신앙이 강한데,

주변에 오히려 헷갈리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보니 나 스스로의 길을 못 정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양가감정이 심해져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하는 

나 자신의 불확실, 의심 속의 충돌이 심했다.


누구보다도 생각이 심플한 사람이 심플하지 못해 졌다고 표현했다.



잘못한 게 없고

잘못되지 않았다.


타인의 입맛에 맞추려 했던 내가 존재했고

그러면 된 거라 믿었는데,

그 타인은 신이 아닌 인간이었고

나는 신이 타인의 말대로 행하면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의지들을 계속 꺾으면서 누적이 되어 자신을 자해하고 있었다.

'이건 다 내가 부족해서...' 라며 말이다.


사람이 버거워졌다는 건 이유가 있다는 것.

사람 안의 하나님도 발견하면서 사람의 사랑스러움도 발견하면서 건강하게 지내야 하는데,

나는 사람과 신의 구분이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다.

사람이 버겁고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사람에게 기대하고 의지했던 나.

사람은 기대하거나 의지할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고 배웠음에도 말이다.

사실은 난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차곡차곡 쌓인 부정적인 환경은 사람을 부담스럽게, 버겁게 만들었다.



엄청난 부작용.



순수하게 믿고 싶었으나 교회에선 성도들을 붙잡아야 하는 많은 비즈니스가 존재했고

교회 사람들은 물들어있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난 나대로 해도 괜찮았던 거였고

사람을 버거워하는 상태를 겪지 않아도 됐던 거였다.

상담사분이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했지만,

감사가 쉽게 나오지 않고 오히려 억울함이 올라왔었다.

'내가 왜...?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산다고..?'



그래서 나는


내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사는 것에 타인이 안타깝게, 아쉽게, 부정적으로 시선을 보낸다고 해서

내가 잘못된 게 아님을 증명할 필요도 없었고

굳이 타인을 설득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었고, 그게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다는 것.

살인, 겁탈, 절도 등등.. 아닌 선에선 나쁘다의 기준은 애매하다는 것.



30년 넘게 지속되어 온 모든 생각이 내 탓이고 내가 부족해 서고 내가 잘못한 거로 결론이 됐다면,

이제부터는 내 탓의 생각회로를

끊어내는 훈련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긴 시간 동안 노출된 부정적인 마음이

한순간에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렇다고 그게 나쁜 게 아니라는 것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각 회로를 바뀌는 게 더뎌도

괜찮다.



교회를 안 가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님을. 

(그럼에도 가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 주변인들. 하나님은 교회 가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근거하에)


상담사분이 기독교가 아님에도 말했던,

사람 안에 하나님이 있고,

사람 한 명 한 명이 교회라는 것.


이미 설교 때 들었던 익숙한 내용이

이번에 다르게 다가온 것은

교회는 우리의 죄를 강조하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 준 것을 강조한 게

나는 죄인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야 하기에,


나 같은 사람에겐 독이었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오롯이 느끼고 감동하고 스스로 흘러가는 대로 차곡차곡 쌓여야 했던 신앙이

수많은 지도와 급함으로 여기저기 휩쓸려 정보만 많아졌다는 것.

정말 말씀만 전하고 성도들에게 어떤 요구를 하지 않는 교회를 찾아보라고 권했다.

이단에 휩쓸려 가지 말고, 증명된 곳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어느샌가부터 거북했던 설교가

정말 말씀을 들으면 괜찮아질까 걱정스러웠지만,

내 문제가 거기서 영향이 많았다 보니

한 길이 확실해지면

다른 건 편해질 거라고 하셨다.




때문에, 길고 길었던 아무에게도 말 못 했던 진짜를 찾고 싶었던 욕망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것.

타인에게 나 자신을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것.

교회가 하나님의 집은 아니라는 것.

내 믿음은 오로지 신만 아는 것.


타인의 시선 기준으로 나의 행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는 것.


상담사 분은,

안 좋아진 상태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가능했던 건,

옆에서 남편이 따뜻하게 받아주고 품어줬기에 가능했던 거라고 말해줬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때

하나님이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이었다면 나에게 이러지 않을까 싶었긴 했는데,

나를 사랑으로 한없이 받아주기에 나의 못된 모습이 드러나서

이런 기회가 생겼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



타인을 존중한다는 건,

내 피와 살을 뜯어지는 고통만큼 어렵다고 말해줬다.

그만큼 마음으로부터 존중이 어렵다는 것.

결혼을 했다면, 다른 집안의 문화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맞다. 겉으로 존중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나와 다름에 열불 나는 게 사람 아니겠는가.




예전의 생각회로가 

문제->기분이 나쁨->타인의 이해->잘 안 되는 내가 잘못된 거구나 내 탓..이었다면

문제->기분이 나쁨->왜 나쁘지->아그렇구나. 그래서 기분이 나빴구나.


에서 끝내야 한다.

직관적으로 보라고 했다.

그리고 느끼라고.


분노 조절이 안되면 손을 씻어보라고 하셨다.



지금부터

가지치기를 할 시간이다.









"남편 복이 있네요~ 그건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어서 남편이 꼭 옆에 있는 거예요"




맞다.

난, 괜찮은 사람이었다.


남편이 그 증거가 되어줬다.




내가 은밀하게 기도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도무지 모르겠으니,

나중에 만날 배우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고 기도했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훌륭한 남편을 주셨다.





미안한 마음보단,

고마움을 더 표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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