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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맴맴 Jul 10. 2024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20240626

20141223 펜일러스트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화나있다.


회사 다니면서 대화에 끼기 위해 첫 커뮤세계에 발을 들였다. (커뮤용어를 몰랐음)

커뮤에는 자신의 속상함을 털어놓거나 아무 얘기나 지껄이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몇몇 글은 글쓴이 빼고 주변인들이 이상한 사람인 글이거나,

자신이 어떤 문제에 있어서 결정을 못해 이게 맞는 건지를 다수에게 물어보는 글 등등이 있다.


글을 보면서 생각해 보면,

그 글의 이상한 타인이 내가 될 수도, 나 역시 나 빼고 다 이상해라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저격한 글을 쓰고도 남을 곳이 익명게시판.


익명게시판이 대나무숲역할을 톡톡히 해줌으로 지인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을 좋은 공간이 되었지만,

이면에 불특정 다수에게(온라인에서) 까일 수 있다.



이 시대 엄마들을 맘충이라며,

이 시대 노인들을 틀딱이라며,

이 시대 젊은이들을 MZ라며,

이 시대 애 낳는 직장인들에게 육아휴직은 이기적이라며,

이 시대 여성들에게 페미들이라며,

이 시대 남성들에게 변태들이라며,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일 똑바로 안 한다며,

등등..


정치적으로 갈라 치기를 한 결과라는 말을 들었다.

세대차이, 성별차이, 정치색 차이... 갈라선 입장차이가 예전보다 많아진 기분이다.



긍정파워를 얻을만한 글보단,

부정적인 언어, 영상, 뉴스, 기사, 글들이 난무한다.(나 역시 부정적인 사람 중 하나)

실제로 부정적인 사건, 자극적인 일들이 늘어난 건지,

그런 글들만 취급해서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불특정 다수가 까내리는 사람들 중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이 있다면,

이입이 돼서 나조차 주눅이 들게 되는 상황.

반대로, '난 그들과 달라'라는 생각을 수시로 넣어줘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펼쳐진다.


여러 글을 볼 때면 온라인 속에서 '나는 정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어 함이 느껴진다.

(댓글에 나와 같은 의견이면 '너도 정상'이라는 반응과 함께)

커뮤의 숲에 갇혀서 원하는 얘기들만 접하고, 원하는 정보를 얻고,

일반화는 안 되지만 내가 경험한 커뮤의 숲엔 일반화가 일상이었다.


글과 다른 의견의 댓글을 달면,

글쓴이는 화를 내거나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옳고 맞고 정상이기 때문'


'나와 다른 건 이상해'라고 생각한다.

'난 이상해'라는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나와 다름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말하고

더 들어보면 달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정말 이상한 사람도 존재하고, 동시에 글쓴이의 억울함도 존재한다)


'이상하다'의 기준은 뭘까.

구분을 잘해야 한다.


사회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윤리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난 성경을 믿으니, 성경의 기준이라 보지만

다른 이들은 어릴 때 배웠던 도덕적 개념으로 기준을 세우는 걸까?

성경을 기준이라 말한 나조차,

그 기준을 잊어버리고 살지 않을 때가 정말 너무 많기에.


나를 화나게 하는 건 상황인가 현상인가 주어진 환경인가.


어지러운 사회에 화나있고,

힘없이 개미처럼 일해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에게 화가 난다.


그럼에도 눈뜬 이상 살아가야 한다.

상담샘은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우리가 오늘 살아있는 게 기적이 아니냐면서 말이다.

그리고 걱정이 많은 나에게 한마디를 더 했다.

하나님이, 그 큰 신이, 더 큰일을 보고 있지 않겠냐며, 이 세상에 선한 자가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교회에서 배운 것은 하나님 아래 선한 자는 없다이지만,

적어도 나는 선한 편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깔려있음을 깨달았다.

자기혐오가 아닌, 자기 연민.


예리하게 나를 보는 것이 정말 무디다는 것을 느낀다.




-


예전부터 난 빨리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었지만,

그건 하나의 회피성이라는 걸 깨달았고.

난 사실 절대 죽고 싶지 않은 생존본능(생존욕구)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항상 까먹는,

죽음은 항상 내 옆에 있다.

노화에 두려움이 다가왔다.

더 깊게 생각해보면 노화도 축복이었다.

그것에 대해 거부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 용기가 있길 바라본다.



매번 까먹는 기억, 예전 글에도 썼던 생각.

우리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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