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시즌스 호텔 바버샵 Herr에 대한 솔직한 생각
매달 머리 자르러 포시즌스 호텔 Herr를 다닌지 어언 1년반이다. 웬만한 헤어 디자이너는 다루기 쉽지 않은 성깔(?) 있는 직모의 소유자인데다 나름 청담 도산공원 주변의 하이엔드 헤어샵을 오랫동안 경험했기에 나름 까다로운 나인데 이 곳에 1년 넘게 다니면서 충성 고객이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회사 근처인 광화문 지역에 널린게 헤어샵이고 이들은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는데 나는 왜 부가세 포함 거금 77,000원을 요구하는 포시즌스 호텔 Herr를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나한테 기가 막힌 특별 서비스를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매월 말이 되면 뭐에 씌인 것처럼 꼬박꼬박 포시즌스 호텔 Herr로 향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의심의 여지없는 ‘I’ 성향이다. 즉, 사람 많은 곳에 있기만 해도 기가 쭉쭉 빨리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끊임없이 기가 빨리다가 잠깐 짬을 내서 머리 자르러 가는데 그 곳에서 마저도 나의 기운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
포시즌스 호텔 Herr는 체어가 하나인 1인샵이다. 한 타임당 1명의 손님만 받기 때문에 헤어 디자이너 외에는 다른 사람과 마주칠 일이 아예 없는 매우 프라이빗한 환경이다. 덕분에 나의 기운을 온전히 보존하며 한 시간가량을 보낼 수 있는데 심지어 갈 때마다 예외 없이 머리 자르는 동안 꾸벅꾸벅 졸곤 한다. 진짜 편하다는 얘기다.
내가 성공한 것 같은 느낌 싫어하는 사람 없을 것이다(진짜 성공한건 아니라는게 함정). 고급진 인테리어의 가게에 들어서면 마치 내가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데 결코 싫지 않은 느낌이다.
Herr는 포시즌스 호텔 9층에 당당히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호텔에서 운영하는 헤어샵처럼 보이고 대리석 인테리어 또한 최고급 포시즌스 호텔과 전혀 이질감이 없어 그냥 호텔의 일부라고 느껴질 뿐이다. 한마디로 프랜차이즈 바버샵 Herr가 아니라 그냥 포시즌스 호텔에 가서 머리 자르는 기분이 들어 다른 Herr 점포와 같은 가격(77,000원)임에도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즐길 수 있다.
남자는 기본적으로 헤어샵 가는거 귀찮아 한다. 내 남동생은 헤어 디자이너가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라고 물을 때마다 “빨리 잘라주세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매달 가는 헤어샵인데도 며칠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하는 정성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포시즌스 호텔 Herr는 네이버로 간편하게 예약이 가능하다. 날짜를 선택하고 들어가서 비어 있는 시간대 Slot을 선택하면 예약 끝인데 가장 큰 장점은 예약금이 없다는 것이다. 즉, 급야근이나 회식 같은 갑자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못 가더라도 페널티가 없다. 사실 포시즌스 호텔 Herr에 다닌 지난 1년반을 돌이켜 보면 예약하고 나서 안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솔직히 예약금을 몇 만원씩 내는 시스템이었다면 그게 괜히 싫어서라도 안 갔을 것 같다. 그들도 내키진 않겠지만 큰 결단력을 발휘하여 어쨌든 나에게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주는 관대한(?) 시스템이 아주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