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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회계사 Oct 05. 2023

15년째 마이너스인 주식을 못 끊는 이유

주식 중독인가 주식 예찬인가

2008년 어느 날. 회계법인 입사 후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우리은행에서 우리투자증권(現 NH증권)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나투어’ 주식 백만원어치 매수했다. 당시 여행주 테마가 뜨거웠던지라 사자마자 금방 몇 %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내 돈 몇 만원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며 '이런 무서운 세계가 있다니'하며 간담이 서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23년 어느 날. 판돈이 꽤 커진 내 계좌에선 하루에도 수십, 수백만원이 왔다갔다 하지만 이제 솔직히 감흥이 없다. 어차피 계좌는 15년째 수천만원 마이너스 상태이고 거기에 몇 십, 몇 백만원 마이너스가 더해져 봐야 티도 안 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대체 왜 나는 뼈 빠지게 번 돈을 세상에 환원하는 자선사업가(?)마냥 계속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며, 안 봐도 상태가 뻔한 계좌를 매일매일 그것도 하루에도 수십번씩 습관적으로 열어 보고 있는 것일까.



1.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직장인에게 펼쳐지는 하루하루가 뭐 다를게 있을까. 참으로 슬픈 현실이고 앞으로 수십년은 더 그럴꺼라고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나에게 로또 같은 기적이 허락되진 않더라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뭔가 새로운 일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아침 출근길에 정각 9시가 되면 뭔가에 홀린 듯이 주식 계좌에 로그인한다. 파란 불이 뜰지 빨간 불이 뜰지는 아무도 모른다(십중팔구 파란 불이긴 하지만). 작년에 매수한 이후 1년 넘게 마이너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주식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했던가. 내가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는 한 그냥 만지는거다. 오랜만에 빨간 불이 몇 개 떴다. 죽은 자식이 금방 벌떡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맛에 주식하는거 아니겠나.



2. 여전히 기대수익률이 높다


주식으로 부자되기 어렵다는거 안다. 통계를 거스르지 못하고 나 또한 15년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주식으로 묵묵히 돈 버는 사람 분명히 있다(양심상 차마 워렌 버핏은 입에 담지 못하겠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되지 말란 법 있는가.


사실 나에게도 성공적인 투자도 있었다. 코로나 터지면서 2020년 3월경 ‘아, 사람 인생이 이렇게 훅 가는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진짜 생지옥(거의 마이너스 1억)을 경험했지만 나는 용감하게도 신용을 풀로 땡겨 LG화학 주식을 미친 듯이 사 모았다. 역시 주식은 공포에 사라고 했던가. 이내 곧 LG화학은 드라마틱한 반등을 보였고 2020년말 나는 LG화학으로 5천만원 수익을 실현하며 정말 멋지게 엑싯했다. 물론 내가 키우던 다른 종목들이 단단히 심술이 났는지 그 수익은 전부 상쇄되어 사라져버렸지만 당시 LG화학 투자는 나의 자랑스러운 트랙 레코드로 남아있다. 언제든 또 제대로 된 녀석 하나만 걸리면 역대급 승부를 볼 준비가 되어있다.



3. 마땅한 대안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자가 최고인거 누가 모르나. 나한테도 현금 10억 정도 있었으면 진작에 서울에 20평대 아파트 하나 샀을꺼다. 내가 가진 몇 천만원으로 내가 고른 그 어떤 종목이든 투자할 수 있고(부자가 된 느낌?) 언제든 계좌에 돈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극강의 유동성은 주식 투자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항상 눈물을 머금고 마이너스 상태에서 뺀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천기누설을 하자면 고금리 시대가 되면서 부동산이 주춤하고 있는 틈을 노려 내가 호기롭게 부동산에 투자하는 순간...주식 시장에서 수차례 증명된 나의 초능력이 또 다시 발휘되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부동산 시장의 역사적 고점을 기어코 만들어 버릴 것 같아 당분간은 경거망동 하지 않고 주식 투자에 전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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