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법리인가?

중세와 초기 근대의 동물 재판(1)

by Alfius Historographus

요즘처럼 한국 사회에서 법과 재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시기는 없었던 듯합니다. 온갖 SNS 및 방송 매체에서 헌법과 법리 해석에 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심심치 않게 중세 재판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당연히도 비이성과 자의적 해석으로 점철된 불합리한 재판의 상징처럼 거론되고 있지요.


서양의 중세는 오랫동안 모든 부분에서 암흑시대라는 오명을 쓰고 무시되어 왔으나 실상 현재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중세로부터의 전통 안에 있습니다. 때로는 계몽주의 이성의 칼날로 무자비하게 쳐낸 조각들이 남아 있다가 다시 조명되기도 하는데 동물의 권리도 그중 하나입니다.


현대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동물은 법적 인격을 소유한 존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상해한 동물을 재판 없이 안락사시키는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우리의 인식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1386년, 노르망디의 옛 도시인 팔레즈에서는 길에서 어린아이를 살해한 살인범의 공개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군중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사형수에게는 그날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새 옷이 입혀졌고 “눈에는 눈”의 원칙에 따라 그가 아이를 상해한 방법과 같이 머리와 앞다리를 먼저 절단한 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앞다리라는 표현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사형수는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의 돼지였습니다. 한 예술가가 이 장면을 마을 교회의 서쪽 벽에 프레스코화로 묘사했고 이 그림은 이후 400년 이상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중세 시대에는 굶주린 동물들이 사람, 특히 어린아이를 공격하는 일이 잦았고 1457년 12월에는 사비니에서 6마리의 새끼 돼지를 동반한 암퇘지가 5살짜리 아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돼지들은 모두 구금되었지만 재판부는 피범벅이 된 새끼 돼지들이 직접 아이를 공격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살인자 암퇘지는 역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Illustration from Chambers Book of Days(1864).jpg Illustration from "Chambers Book of Days" (1864)

이 모든 재판 과정은 인간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법률에 의거하여 정식 재판관, 변호사, 행정관, 사형 집행인들이 참여하여 진행되었는데 역사가 피터 딘젤바허는 이 점이 동물 재판이 사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진지한 절차였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증거라고 지적합니다.


돼지, 여우, 늑대, 염소, 당나귀, 황소, 소, 개, 말, 양과 같은 동물은 민사 및 형사 법원의 관할권에 속했고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교수형이나 화형으로 즉결 처형되었지만, 들쥐, 쥐, 두더지, 뱀장어, 거머리, 메뚜기, 뱀, 달팽이, 흰개미, 바구미, 지렁이 등은 교회 법정에서 처리되었습니다. 전자는 대부분 사람을 직접 공격한 죄, 후자는 농사에 해를 끼친 죄목이 대부분이었지요.


교회 재판의 경우 절차는 대개 다음과 같았습니다. 동물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호소하는 마을이나 지역을 조사한 후 재판에 회부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동물을 변호할 변호인을 지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소환장이 법원 관리에게 내려졌고 법원 관리는 해당 동물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에서 소환장을 크고 엄숙한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기소된 동물에게는 법정에 출두하여 자신의 사건을 변론할 기회가 세 번 주어졌고 패소하면(보통 패소했지만) 일정 기간 내에 그 지역을 떠나야 했습니다. 선고일에 출두하지 못하고 판결에 복종하지 않으면 파문의 처벌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동물에게 파문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문이 일단 선고되면 농민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해로운 동물들을 처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살충제를 조제하여 뿌린다거나 불을 놓아 해충들을 박멸하려는 시도를 훨씬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놀랍게도 이러한 재판이 항상 동물들의 패소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16세기의 저명한 프랑스 법학자 바르톨로뮤 샤세네는 젊은 시절 오툉 지역의 교회 법원에서 보리 작물을 함부로 먹어치우고 밭을 망쳤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쥐들의 변호인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피고인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한 번의 소환장 낭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여졌고 쥐들이 거주하는 모든 교구의 설교단에서 소환장이 다시 낭독되었습니다.


쥐들이 여전히 나타나지 않자 샤세네는 그의 의뢰인들이 법정까지 오는 길이 길고 여행에 따르는 심각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소환에 응할 수가 없다고 변명했습니다. 길에는 항상 천적인 고양이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지요. 그는 피고인들이 법정에 안전하게 출두할 수 없는 경우 소환장에 항소하고 따르기를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들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지역의 모든 고양이 주인들은 일정 기간 동안 고양이들을 집에 가두어 놓아야 했는데 고양이들의 통금 시간을 지키기 어려웠던 주민들은 결국 소송을 기각했다고 합니다.


중세를 벗어난 이후에도 동물 재판은 계속되었습니다. 때때로 동물 주인이 연루되었는데 1662년 식민지 코네티컷에서 윌리엄 포터라는 남자가 동물과의 "부자연스러운 육체적 음란 행위"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는 소 3마리, 양 3마리, 돼지 2마리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고 눈앞에서 동물들이 먼저 죽임을 당하는 것을 지켜본 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1750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은 좀 더 흥미로운데 자크라는 프랑스 농부가 당나귀와 관계를 가진 혐의로 당나귀와 함께 법정에 섰습니다. 그러나 여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당나귀를 대신하여 증언대 올랐고 증인들은 그 당나귀는 항상 순결하고 순수했다고 맹세했습니다. 감동한 판사는 당나귀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결국 강간범만 화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현대의 역사가들과 법학자들에게 전근대 사회의 동물 재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미스터리입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재판도 적지 않은 비용과 고급 인력이 필요한 절차였습니다. 중세인들은 말도 하지 못하고 굳이 권리를 챙겨 줄 이유가 없는 동물들을 위해 왜 이런 사회적 비용을 지출했을까요? 물론 소위 중세적 망딸리떼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비합리한 사고들을 포함하며 그 이면에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망라하는 여러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과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모든 면에서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성을 소유한 인간이 모든 자연 존재에 우선하는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을 진리로 받아들인 이래로 인간의 삶 역시 더 좋아지지만은 않았음을 이제는 모두가 압니다. 존재 자체로 우월하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경외심과 존중의 마음을 회복하여 공생을 도모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