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법리인가?(2)

중세와 초기 근대의 동물 재판(2)

by Alfius Historographus

여름밤이 깊어질수록 귓가에 맴도는 모기 소리도 점점 커져갑니다. 한 친구와 밤잠을 설치게 하는 모기를 법정에 세워 심문해 볼까 하는 우스갯소리를 나누다 문득 생각이 나 곤충 재판에 관한 자료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정확히 모기를 피고로 지정한 재판 기록은 찾지 못했으나 벌, 파리, 바구미, 메뚜기 등 여러 곤충이 재판에 회부된 기록이 있군요. 사람을 쏜 혐의로 기소된 벌을 제외한 대부분의 곤충들의 죄목은 주로 농작물에 끼친 피해였습니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범죄는 주로 교회 법정에서 다뤄졌으며, 그 절차에 대해서는 1편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9세기에 보름스 지방에서 사람을 쏘아 사망에 이르게 한 벌은 돼지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처벌을 받았습니다. 벌집을 통째로 몰살시키는 잔인한 형벌을 받았지요. 범죄 개체를 특정하지 않고 전체를 처벌하는 방식은 부당하지만 샤세네처럼 유능한 변호사를 두지 못한 벌들은 억울한 처형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반면, 농작물을 해친 곤충들은 다수가 가담한 집단 범죄임에도 때로 관대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1587년 생 줄리앙 지역에서 포도밭을 파괴한 혐의로 기소된 바구미 떼의 변호사는, 자연법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짐승에게 민법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이 식물을 먹고살도록 창조한 바구미가 본능에 따라 농작물을 먹는 행위는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결국 이 논쟁은 바구미들을 위해 별도의 서식지를 할당하는 타협점에 이르게 됩니다.


바구미들의 생존권이라니 이 얼마나 진보적인 사상입니까? 동물권이 역사상 가장 진지하게 고려되는 이 시대에도 인간의 농사를 방해하는 해충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보호단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듣지 못했다고 세상에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혹 들어보신 분이 있다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16세기는 진정으로 모든 생명체의 권리를 존중하는 낙원과도 같은 시대였을까요? 당연히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판결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좀 더 자세히 사건의 전모를 살펴봅시다. 처음 와인 양조업자들이 바구미들을 고소했을 때 교회 재판장인 프랑수아 보니바르는 이 무지한 곤충들을 처벌하기를 거부하고, 대신 와인 양조업자들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세 번의 특별 미사에 참석하며, 교회에 미납된 십일조를 바침으로써 신의 분노를 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구미들은 평화롭게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긋지긋한 바구미들이 다시 돌아오자 약 8개월에 걸친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고, 변호사는 신의 피조물인 바구미는 모든 푸른 풀을 양식으로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의 섭리는 검사 측에서도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였고 도시의 시장은 중재안으로 바구미가 포도원을 떠나는 조건으로 서식지에 일종의 보호 구역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소송의 결과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 법원 기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벌레가 갉아먹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보다 현실적으로 해석합니다. 당시 교회 법정의 근본적인 한계는 물리적 강제력의 부재였습니다. 주교에게는 메뚜기나 바구미 떼를 박멸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교회 법정에서 가장 엄중한 판결인 파문은 가련한 곤충들의 천국문을 막았으나 당장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지요.


그럼 파문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막을 수 없다면 교회 법정의 역할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교회 재판을 인간 청중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신학적 연극으로 해석하는데 그 연극의 구체적인 목표는 바로 십일조 수입의 증대였습니다.


이 논리는 다음과 같이 전개됩니다. 교구민들이 내는 십일조는 당시 교회의 핵심적인 경제 기반이었으나 십일조 납부 회피는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항하는 교회의 주된 강제 수단은 파문과 같은 영적인 위협입니다. 농작물을 파괴하는 재앙은 공동체 전체의 위기였고, 이는 신학적으로 십일조 미납을 포함한 공동체의 죄에 대한 결과로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재판을 열었습니다. 해충은 이동성이 강하고 개체 수는 자연적으로 변동합니다. 법원이 파문과 추방 명령을 내린 뒤 해충이 자연적으로 줄어들면, 교회는 자신의 영적 권능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감소하지 않으면, 이는 십일조를 제대로 내지 않은 교구민에게 내리는 신의 벌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지요.


따라서 재판은 동물의 권리나 해충 구제보다는 교회의 권위를 공고히 하고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공개 시연이었습니다. 사실 바구미의 생존 권리를 인정한 판결은 강제 집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법정의 지혜와 권능을 과시할 수 있는 매우 세련된 해결책이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교회의 권위는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벌레가 사라지면 교회의 공로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죄 때문이라는 논리가 성립했으니까요.


이렇듯 동물재판의 목적은 당연히도 순수하게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동물을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의 피조물로 여기고 인간과 공존할 권리를 인정하는 인식은 더 나아가 동물뿐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의 운명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앞의 글에서 오툉의 쥐들의 변호를 맡았던 법률가 샤세네는 가장 하찮은 피고에게도 법의 조문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의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그 절차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가 세운 선례가 어떻게 동물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이전되었는지를 우리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의 한 사건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1540년, 이제 프로방스 고등법원의 의장이 된 샤세네는 당시에 이단으로 고발된 개신교 분파인 발도파에 대한 재판을 주재하게 되었습니다. 준엄한 이단 심판에서 재판에 참석조차 하지 못한 발도파가 거의 절멸 위기에 처한 결정적인 순간에 재판관 중 한 명이었던 르노 달랭이 일어나 샤세네에게 발언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샤세네가 과거 오툉의 쥐들을 변호했던 유명한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한때 동물조차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재판을 받거나 선고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장본인이 무려 인간들에게 자신들을 변호할 기회도 주지 않고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자신이 세운 선례를 상기시키는 이 발언에 마음이 움직인 샤세네는 국왕에게 요청하여 고발된 발도파에게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공정한 심문을 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칙령을 얻어내기에 이릅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후 샤세네 자신이 사망하는 바람에 그 절차는 흐지부지되었으나 이 역사의 한 장면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가장 미약한 존재에게 적용된 법과 정의의 원칙은, 수십 년 뒤 인간의 생명과 종교의 자유가 걸린 중요한 재판에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샤세네가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쥐들을 변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정의가 박해받는 발도파 사람들을 보호하는 힘이 되어 돌아온 것이지요.


이것은 단순히 동정심이나 공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법적 기준이 결국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 힘을 갖는다는 논리적 귀결이며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이 단지 비유적인 수사가 아닌 이유입니다.


동물은 인간이 보기에 귀엽고 안쓰럽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평생에 걸쳐 나의 권리를 온전히 내 힘만으로 지켜낼 수 있는 개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누가 위급한 순간에 나를 지켜줄 발도파의 쥐가 되어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저 유한한 존재로 태어나 생로병사의 굴레를 짊어지고 고된 삶을 살아내는 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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