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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Sep 23. 2024

녀석을 만났다

오후 두 시 반, 하루 중 가장 무료한 시간이다. 해인은 커피를 마시러 호텔 야외 카페를 찾았다. 대낮부터 끈적한 음악에 온몸이 늘어진다. 드문드문 여유롭게 졸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해인은 커피를 들고 적당히 달구어진 의자를 찾았다. 글라스 안의 엉켜있던 얼음덩이가 바사삭 부서진다. 보드라운 바람이 해인의 귓불을 간질이니 졸음이 쏟아졌다. 이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축축한 느낌에 깜짝 놀라 축 늘어진 손끝을 바라본 해인. 세상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주먹만 한 푸들 한 마리가 해인의 손을 핥는 중이다. 녀석은 뭐가 그리 반가운지 뒤뚱뒤뚱 꼬리를 흔든다. 움직임이 없었다면 그저 인형인 줄 알았을 거다. "얘, 너 어디서 온 거니? 주인은 어딨어?" 이어 털썩 주저앉아 멀뚱멀뚱 해인을 올려다보는 녀석. 급기야 해인의 신발에 기대어 잠이 든다. 따뜻하다.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해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그 어디에도 잃어버린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녀석을 어떻게 하지?


해인은 서둘러 호텔 레지던스 룸으로 돌아왔다. 마침 입고 있던 외투 안에 녀석을 담았는데 얌전히 잠든 모습이 신기하다. 다행히 로비는 입주객 맞이로 분주해서 아무도 녀석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잠든 녀석을 침대 옆 러그에 내려놓으니 기지개를 켠다. 끊임없이 꿈틀거리던 녀석은 갑자기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더니 실수를 했다. 이런. 녀석은 마치 도장을 찍듯 연이어 두 곳에 실례를 하곤 미안한 듯 해인을 쳐다본다. '아. 이제 어쩌지?' 해인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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