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양수다인 Sep 08. 2024

스페인은 미술 강국이다!

미술은 국가의 힘을 보여주는 거울


스페인(Spain)이라는 단어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나라 사람들의 말과 글로 표현된 명칭은

에스파냐(España)이다. 이 나라의 정식 국가명은

레이노 데 에스파냐(Reino de España) 즉,

에스파냐 왕국이다.


달리 말하자면, 코리아(Korea)는 영어명이고

한국어와 한글로 표현된 일상적으로 표현되는

북위 38도에서 43도 사이, 동경 124에서 132도

사이에 위치한 지구상의 특정 국가를 한국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국가명은 대한민국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들의 언어로서는 에스파냐이지만 편의상

앞으로는 스페인이라는 영어명을 사용하겠다.

(만약 이 미천한 글을 볼 에스파냐 국적의

분들께서 지속적으로 스페인이라는 영어 국명을

사용하는 거에 불편함을 넘어 불쾌함마저

느끼실 수 있다면 미리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필자 역시 에스파냐보다는 스페인이라는

단어가 더 쓰기에도 편하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스페인은 한국에게 잘 알려져 있는 비교적 익숙한

국가들이다. 유럽을 하나의 거대한 지리적 공동체로

결속하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의

회원국만 하더라도 27개국이며 이외에 유럽이라는

대륙에 위치한 정식 국가만 49개국이다. 이 49개국

하물며 EU의 회원국 27개국을 전부 나열할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국가들을

말해보라고 하면 머리를 쥐어짜서 나올 수 있는

국가명에 스페인은 아마 빠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은 유럽 대륙의 서남쪽에 위치해서

남부 유럽국가로 여겨지지만 서유럽 국가로도 분류되는데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유럽의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 이 서유럽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의 오늘날 브라질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에서 전 세계에서 4억 5,000만 명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언어 중 하나인 바로 그 언어가 이 국가명이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망하더라도 아마 스페인이라는

언어명은 남아 있어서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리

속에 기억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유럽에서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는

스페인 왕국 오직 한 곳뿐이지만 스페인어가

대서양 건너 중남미, 더 넓게는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

뉴 멕시코(New Mexico) 주 등 미국 서부 및

남부의 텍사스(Texas) 주와  플로리다(Florida) 주,

이제는 동부의 뉴욕(New York) 주와

뉴욕시(New York City)에서도 통용될 정도로

미국 전체에서 주요 언어가 된 데에는

스페인이 과거 화려한 영광을 누렸기 때문이다.


미국 내 스페인어 사용 지역


인류의 역사에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즉,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서구의 열강들과

뒤늦게 아시아의 일본이 다른 국가들을 침략하여

식민지(colonization)를 건설하고 제국을 건설하던

시기를 제국주의(Imperialism) 시기라고 지칭한다.


이 시기를 특별히 제국주의 시기라고 지칭하는 건

과거의 지배 방식과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 시대에는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다른

국가나 민족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자원이나

곡물 자원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에 그쳤다.

반면 19세기의 침략국가들은 예외 없이 산업화에

돌입하여 본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식민지의 모든 경제적 기반과 자원

-인적 자원을 비롯하여 -

을 착취/수탈하고 본국에서 만들어 낸 최종 상품을

식민지에 되팔며 철저하게 본국의 산업/경제적

복속 상태로 만드는 특성을 지녔다.

제국주의는 산업혁명과 발전된 기술문명 그리고

고전적인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형성되었던 당시의

시대적 산물이었다.


'제국주의'라는 단어는 '제국(imperial)'이라는

단어와 '주의(-ism)'이라는 접미어가 결합한 용어다.

이는 이미 기존에 제국은 존재했던 것을 의미한다.

제국은 제국주의 시대가 막이 올랐던 19세기에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던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복속된 국가로부터 세금이나 각종 자원을 요구하였던

행위는 거의 인류가 국가라는 단위를 만들어 낸 시대와

함께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군사적 우위에 있는

국가들이 너도 나도 힘없는 국가나 민족을 침략하여

땅따먹기를 하고 빨대를 꽂는 행위가 유행을 넘어

전 지구적 광기(maniac)가 된 차이이다.


그러한 기준에서 스페인은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제국이었다.

제국주의 시대 가장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의

전형을 보여준 영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걸쳐

전 세계의 4분의 1이 넘는 광대한 영토에 식민지를 개발하여

"해가 지지 않는 국가"라는 영광 또는 오명을 얻기 전

이미 스페인은 영국보다 먼저 전 세계에서 해가 지지 않는

국가로서 첫 깃발을 꽂았다.


동쪽으로는 지중해를, 서쪽으로는 대서양을 인접한

스페인은 대서양 건너편의 신대륙이라고 명칭 된

남아메리카와 중부 및 카리브해(Caribbean Sea)의

섬들 및 북미의 남쪽 해안가를  본국의 식민지로 삼았다.

대서양으로 나아간 스페인의 함선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는 한편,

더욱더 남쪽으로 배를 몰아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태평양으로 진출하여

인도의 땅 일부와 동남아시아에 태평양 한 가운데에 위치한

섬 무리를 식민지로 삼는다.

동남아시아의 군도들은 오늘날 필리핀이 된다.

19세기 영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주력하였던 것과 달리

스페인 선배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보다는

아메리카 대륙에 주력하며 영국보다 먼저

해가 지지 않는 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하였다.


전성기 스페인 제국이 개척한 영토


하지만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혹은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와 신흥국인 미국,

나중에는 아시아의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오히려 가지고 있던 식민지를

모두 뺏기거나 기존의 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이

독립선언을 하면서 제국주의 시대의

무대에서 쓸쓸하게 퇴장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19세기 이전 화려한 무대의 주인공은 스페인이었고

어느 순간 영국과 네덜란드가 공동 주연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프랑스와 미국이 또 다른 주인공이 되었고

주인공 자리를 잃은 무대의 조연의 자리도

지키지 못하였고 결국 무대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스페인이 역사라는 무대 위의 화려한 주연이었다는 사실은

그럼에도 여러 군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마치 연극이나

공연예술에 무대에 대한 포스터나 공연 사진, 무대 의상

등이 남아 있어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어떠한 활약을

했는지를기억할 수 있듯 과거 스페인이

화려한 주연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전 세계 4억 5,000만 명의 인구가 사용하는 그 언어가

'스페인어'라고 불리는 게 그 증거이지만

눈에 보이는 또 다른 증거가 남아 있다. 그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에 위치한 국립프라도미술관

(Museo Nacional del Prado)이다.



전 세계에는 세계적인 명성의

박물관 혹은 미술관들이 존재한다.

프랑스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Musee du Louvre),

오르세미술관(Musee d'Orsay),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

테이트 미술관(Tate Museum)과

테이트 모던(Tate Modern Museum),

미국 뉴욕의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워싱턴 D.C.(Washington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thonian Museum),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의

에르미타쥬미술관(Hermitage Museum),

이탈리아 및 바티칸 시국(Vatican)의

바티칸미술관(Vatican Museum),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Uffizi Gallery)

오스트리아 빈(Vien)의

미술사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등등.

이러한 박물관/미술관들과 더불어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은 빠지지 않게 거론되며 아마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곳일 것이다.

실제로 유럽 3대 혹은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로서

빼놓지 않고 프라도미술관을 꼽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이는 프라도미술관 자체가 엄청나게 뛰어난

컬랙션을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프라도미술관은 고대에서 19세기까지 국가 소유의

미술품으로 구성된 미술관이다.

프라도미술관은 1819년 개관한 개관 한 지 2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미술관으로서 국가가 설립/운영하는

국가대표 미술관이다.

1793년 전 세계 최초의 국립박물관/미술관인

루브르박물관이 왕실이 소장하던 미술 컬랙션이

국유화되며 설립되었다시피,

프라도미술관 역시 기존 스페인 왕실이 대대로

소유하고 있던 미술품을 기반으로 미술관과 미술관이

소장한 컬랙션 전체가 국유화된 국립미술관이다.


프라도미술관 실내


즉, 국가 혹은 정부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설립하고자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컬랙션을 구축하는 방식이

아닌 과거의 국왕들이 수집하거나 왕명으로 왕실을

위하여 제작된 작품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구축된 컬랙션이 국왕과 왕실 가족이 아닌 국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국가 전체의 유산으로 전환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다 보니 유럽의

국가박물관/미술관은 그 자체가 그들의 역사이다.


Titian, "Portrait of Felipe II" (1551)


군주와 왕실이 진귀한 것들(curiosity)을 소장하는 전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회화, 조각 등의

오늘날 미술에 해당하는 것들에 대한 집중적인 소유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프랑스 왕실의 미술 컬랙션 전통이 최초의

르네상스 군주로 평가받는

프랑수아1세(Francois I, 1494-1547)시대 시작되어

17세기 중반 루이14세(Louis XVI, 1638-1715)

시기에 꽃을 피웠다.

스페인 왕실의 미술 컬랙션 전통 역시 르네상스 시대부터

본격화되었다. 프랑스아1세의 평생의 숙적이었던

카를로스1세(Carlos I, 1500-1558)는 그의 친족들의

영향을 받아 군주의 덕목으로서 미술에 대한

관심과 후원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그의 아들로서

스페인 왕위를 계승한 펠리페2세(Felipe II, 1527-1598)는

스페인 역사상 더 나아가 르네상스 시대 가장 중요한

미술 후원자이자 컬랙터 중 한명으로 기억된다.

펠리페2세의 손자인 펠리페4세(Felipe IV, 1605-1665)는

서양 고전 미술에서 손꼽히는 천재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를

궁정화가로 임명하여 그가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Velazquez, "Las Meninas" (1656)


이 세 명의 국왕들이 스페인의 왕좌에 올랐던 시기

스페인 미술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동시에 카를로스1세, 펠리페2세, 펠리페3세를 거쳐

펠리페4세로 이어지는 이 시기는 스페인이 유럽의

패권 국가이자 아시아로까지 진출하여 전 세계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시기이며

짧은 영광을 맞이하고 서서히

몰락의 길로 나아간 시기이기도 하다.

16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이 시기를 흔히

"스페인 역사의 황금시기(Golden Age of Spain)"라 한다.


스페인 황금시대는 이 네 명의 군주 중 카를로스1세가

스페인의 국왕의 자리에 오르는 1516년 이전부터 시작된다.

흔히 역사학자들은 황금시대의 원년을 1492년으로 꼽는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신대륙을 발견하여 신대륙을 수중에 넣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Iberia)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여 800여 년만에 다시

기독교 세력권으로 탈환에 성공한 게 1492년이었다.

한편 황금시대는 펠리페4세의 승하 이후 그의 아들인

카를로스2세(Carlos II, 1661-1700)가 후사 없이 승하하는

1700년까지 혹은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의 결과

펠리페5세(Felipe V, 1683-1746)가 스페인의

확실한 국왕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1724년까지로 보기도 한다.

즉,  1492년에서 1700년 혹은 1724년까지를

스페인 황금시대로 규정하는 편이다.

이 1492년에서 1505년까지의 13년을,

1700년부터 1724년을 제외한

1505년부터 1700년의 200년은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의

합스부르크(Habsburg) 가문이 스페인 왕위를

차지한 시기로서 "스페인-합스부르크 왕조"의

시기이기도 하다.

결국, 스페인 황금시대는 대략 200년에서 230년

동안의 시기이지만 거의 대체로

스페인-합스부크르 왕조 시대 전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시기 오늘날 프라도미술관을 구성하는

거의 대부분의 컬랙션이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프라도미술관은 스페인 미술 역사 그 자체이며

과거 역사라는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시절에 대한 증거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라도미술관이

스페인 미술가들만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미술관인

루브르박물관의 대표작이 이탈리아 출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모나리자 Mona Lisa>이며 프랑스인들이 아닌

외국인 예술가들의 작품들 혹은 유물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듯, 프라도미술관 역시 스페인 미술가들의

작품만으로 컬랙션이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15세기에서 17세기 유럽 전체의 미술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 뛰어난 화가들의

뛰어난 명작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프라도미술관은 스페인의 미술 문화뿐만 아니라

그 당시 스페인이 유럽에서 얼마나 강력한

국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Titian, "Danae and her Nurse" (1550-1553)


과거의 영국과 프랑스, 오늘날의 미국이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 대거 소장한 대형 박물관/미술관을 소유하며

강력한 미술 문화 자원을 가진 국가로서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과거에 그리고 지금 이들 국가들이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프라도미술관이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서양 미술의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컬랙션을 보유한 박물관/미술관 중

하나였던 건 당시 스페인이 강력한 패권 국가였으며

미술 문화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선진국 담론을 연구한 김종태는 자신의

<선진국의 탄생>(2018)에서 국내 언론에서

선진국으로 지칭되는 국가들의 인용 빈도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일본이 33회, 미국이 16회, 영국 10회, 독일 9회,

프랑스 7회로 최상위 5개국으로 기록되었다.

이들은 과거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글로벌 국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가들이다. 일본이 1위를 기록한 건

일본이 한국의 바로 옆에 위치한 국가이기 때문이기에

미국을 제칠 수 있었겠지만, 글로벌 국가였음을

의심하기는 힘들다.

20세기 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지역을 침략한

제국주의 국가들 중 하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1980년대 미국을 위협하는

전 세계 경제 2위의 국가였으며 한 때는 도쿄의

부동산 가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쌌을 정도였다.


국내 선진국 담론에서 최상위를 차지한 다섯 개 국가는

어떻든 미술사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의 중심지였으며, 1990년대 도시재생과

런던시가 산업도시에서 전 세계 금융허브로 재탄생하면서

뉴욕에 자리 잡은 동시대미술가들은 런던으로 모여들었다.

이외에도 영국은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들

-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1792),

  게인스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1788),

  터너(William Turner, 1775-1851),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 등 - 을 여럿 배출했다.

독일의 베를린은 런던 이후 21세기 동시대 미술가들의

허브로 떠올랐으며 그 이전에도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를 비롯한

여러 대가들을 배출하였다. 일본 역시 아시아 미술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 국가이다. 뿐만 아니라

버블 경제 시대  유동성 자금은 상당한 양의 서양미술을

크리스티(Christie)나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사 모았으며  인상주의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들이

일본 도처의 미술관이나 개인 컬랙션에 퍼져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선진국, 과거에는 제국주의 국가들,

보다 긍정적인 표현으로는 글로벌 리더 국가들로 꼽히는

국가들은 예나 지금이나 문화적으로,

특히 미술에서도 상당히 우위에 있었던 국가들이다.


Durer, "Self-Portrait" (1498)


그러한 면에서 오늘날 프라도미술관으로 대표되는 스페인이

국가 단위에서 소유하고 있는 미술품들은

프랑스, 영국, 미국의 주요 박물관/미술관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명성을 지녔으며 스페인이라는

지리적 공간이 서양의 고전 미술의 역사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은 스페인이

과거에 엄청난 글로벌 리더 국가였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주요 키워드들 가운데 미술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페인은 상당한 문화적 자원을

소유한 미술 강국이며 스페인 왕국이 소유한 미술 유산은

역으로 스페인의 과거의 영광을 말해준다.


과연 1492년에서 1724년의 230여 년 동안 스페인 미술의

역사에서는 어떠한 주요한 작품들이 존재하며

어떠한 사건들이 발생하였으며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이제부터 하나의 그림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황금시대로의

과거 여행을 떠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스페인발 비행기 탑승 완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