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넋두리

by 서주양

거의 1년 만에 브런치 스토리에 들어왔다.


1년 사이에 좋아하던 몇몇 작가님들은 휴재 중이었고, 또 어떤 이들은 아예 이곳을 떠나 있었다.

그리움 안고 고향에 돌아왔는데, 정든 산책로 위에 갑자기 낯선 도로가 깔린 느낌이다.


2024년, 브런치는 거의 내 몸과도 같았다.
그런데 연말 무렵, 나를 덮친 사건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나는 브런치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붙잡고 있던 업장을 닫았고, 부모님 시절부터 지켜온 상가의 전세금은 돌아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건물주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자격조차 없는 며느리가 부모님과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전세 사기. 작은 돈도 아니었다. 거의 1억에 가까운 돈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나에게 해결을 부탁하셨고, 나는 형사고소와 상속인을 향한 민사소송을 동시에 준비했다.

어려운 법률 용어들과 산더미처럼 많은 서류들 앞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허다했다.


막막함이 몸의 무게처럼 내려앉았다.


누군가는 변호사를 쓰라 했지만, 진짜 정말로 돈이 없다.

현재, 해결된 건 없다. 다만 내가 조금 똑똑해졌다.


비혼을 결정하며, 혼자 사는 여자는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영끌로 청약을 신청했다.
2022년도 오산 변두리였지만 당첨됐고, 2025년 3월 입주를 해야 하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경영위기로 생계를 잇던 업장을 폐업했다.

많은 자영업자들처럼 우리도 코로나 타격이 컸다.


백수가 된 나에게 대출은 멀어졌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떠밀리듯 거리로 나왔다.

40대 초반, 경력의 끊긴 시간들이 거의 5년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자격증들을 꺼내 고민했다. 사회복지사, 아동보육 한식조리사.

열심히 살았는데, 왜 손에 쥔 건 없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기 연민에 젖어 있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출은 번번이 거절되었다.


“정말 이자 밀리지 않을 거예요.”


울먹이며 은행 창구에 고개를 숙였다.
열 곳이 넘는 은행을 돌며, 나는 길 위에서 미친 여자처럼 울고 다녔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남편이 있었다면, 이 겨울이 조금은 덜 무서웠을까.
처음으로 결혼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우여곡절 끝에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새 아파트에 들어왔다.


전세금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나는 작은 월급으로 대출이자와 부모님의 삶,

그리고 나 자신의 미래를 지탱하고 있다.


처음엔 감사했다.
힘들어도 일해서 이자를 갚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월급이 들어오는 매달의 규칙성조차 위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람의 기분을 맞추며 살아가는 일이 뼈에 사무쳤다.
사장일 때는 불안정해도 나에게는 자유가 있었다.
직장인의 삶은 그날의 오너의 기분을 살펴야 한다.


"나는 일하는 기계다!"

"아니 이건 게임이다! 재미있다! 아하하하"


뇌를 속여본다.

일은 생각보다 더 고되었다.
자괴감이 목울대에 때린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현실에는 분명히 귀천이 있었고, 그 귀천은 결국 사람이 만든 장벽이었다.


‘감사하자, 감사하자.’


되뇌며 새벽길을 나서지만, 출근길에 비친 얼굴은 쓰레기통 같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돈은 없고, 일터는 힘겹고, 간절히 원하는 꿈은 손에 닿지 않는다.


하아......

나는 언제쯤 이 헛된 욕망들과 끝도 없는 문제들과 헤어질 수 있을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