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시절, 모든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음악 선생님들이 화려하고 강렬한 장미 같다면, 국어 선생님들은(남자 선샘님도 포함해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소국 같은, 감히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분이셨다. 물론 고등학교 때는 정말 이상한, 저런 사람이 국어 선생님이라는 게 믿을 수 없는 정도로 변태 같은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국어 시간이 너무 좋았다. 학기 초에 새 교과서를 받으면 국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는 게 나의 기쁨일 정도로 국어 시간과 국어 선생님들을 사랑했다.
중1 여름방학을 앞두고 이제는 중학생이니 이런 작품들도 읽어보라며 국어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추천해 주신 신경숙 작가님의 외딴방, 그리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 방학 동안 정말로 그 책을 읽어본 아이들은 몇 안되었겠지만 나는 서점에서 그 책들을 사서 읽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소설이, 수필이, 시가 좋아졌던 것 같다.
또 기억나는 다른 국어 선생님은 긴 생머리에 집시스타일의 긴치마를 좋아하시던 분이셨다.
''에'와 '애'와 '예', '외'와 '왜', 의'와 '으'의 발음 차이를 한참 설명해 주시던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들으면 구별되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우리들에게 ''에'와 '애'와 '예', '외'와 '왜', 의'와 '으'를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은 절대 쉽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별 관심 없이 듣고 있던 그 수업시간은 시간이 이렇게 지난 후에도 나는 왜 또렷하게 기억나는 걸까? 지금도 난 가끔 혼자 ''에'와 '애'와 '예', '외'와 '왜', 의'와 '으'를 소리 내어 말해보곤 한다.
그리고 작은 키에 뿔테 안경을 쓰신 외모도 목소리도 소녀같이 귀여우셨던 국어 선생님. 그때 선생님은 결혼을 앞두고 계셨는데 가끔 들려주시던 연애 이야기에 우리는 같이 설레곤 했었다. 선생님이 국어책에 있는 시를 낭송해 주시면 그 시는 한 구절 한 구절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어쩌면 이 모든 순간들이 아주 오래전 일이라서 내 기억 속에 미화되어 보석 같은 모습들로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가 국문학과를 나왔다거나 국어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이 다시 보인다. 나에게 국어 선생님은 무조건적인 동경의 대상이다. 선생님들에게 나는 바다 위에 모래 같은 존재였겠지만, 선생님들은 나에게 바다 위에 섬 같은 존재셨다.
내 추억 속의 국어 선생님들은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실지...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