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착취

by Snuff

과학이 발명이 아닌 발견이라고 필자는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발견하려는 모든 행위들은 소유와 갈취를 요구한다.

픽션은 픽션의 고유 세계의 머무를 때, 작가 자신의 권력을 독자에게 양보할 수 있다.

그것은 픽션 내의 알레고리와 비유로 작동하는데 대략 이런 식이다. 독자 자신이 생각했을 때; 이 세계가 사실 작가의 정치적 발언이니, 이런 비유를 숨겨놨느니, 작가의 의도가 이것일거라고 추측하는 독자의 모든 주장은 모두 예술 작품의 독자의 소유를 요청한다.


1.

홍상수 감독 작품을 보다가, 홍상수 자신의 이야기가 평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의 기표는 우리 관찰자들의 기의를 필요로 하여 텍스트가 생성된다.

반면 홍상수의 영화 기표는 영화 세계 안의 기의를 필요로하는 것이 아닌 영화 세계 밖, 외화면, 현실 세계의 홍상수를 목표로 한다.

이것이 홍상수의 정치적 발언이겠거니 하는, 우리가 영화를 우리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전에, 홍상수는 관객의 발언과 주장을 묵비하고 자신이 예술 작품에 가하는 권력을 드러낸다.



2.

내외부로 완결된 서사의 특징들은 독자 우리의 예술 권위의 찬탈이 무력화되는 작품들, 19세기 리얼리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다.

리얼리즘 작품들의 구성이 '이 이야기를 믿어서는 안된다.'라는 픽션의 구심과 '이 이야기는 믿어야 된다.'라는 현실의 담론의 외심 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것은 바쟁의 논리이다.

실존주의 텍스트가 픽션 텍스트의 기의를 제거하는 역할이라면, 독자의 해석과 상상을 제거하는 텍스트라면 실존의 논리는 현실의 텍스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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