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다이어리 1

엄마, 오늘도 고생했어

by 보통사람

엄마가 아프다.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으셨다. 그 소식을 들은 건 아이들과 만화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을 때였다.


"엄마, 왜 영화가 시작도 안 했는데 울어? 은하안전단이 슬퍼?"

둘째가 나를 보더니 물었다.


엄마가 아플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소재로 접하면 잠시 상상만 해보았을 뿐, 내 일이 될 거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상상만 했을 때에도 눈물이 그렇게 쏟아졌는데 막상 현실로 부닥치니 말문이 막혔다. 아이들이 곁에 있으니 소리내어 펑펑 울지 못했다. 은하안전단 만화영화를 보는 동안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 엄마는, 내 엄마는 진짜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을 써 본 적이 없다. 늘 하루하루 바쁘게 돈을 벌었고 틈나는 시간에는 자식들 배 채워주려고 열심히 요리했다. 수만 가지 집안일을 죄다 혼자 해냈고 아빠의 가게 일을 도맡아 했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과 말들이 친정 엄마랑 흡사하다라는 생각을 나 스스로 할 만큼 내 시간 안에 엄마는 가득했다.


가게를 그만 두고 60살이 넘어서야 일자리를 구해 혼자서 첫 월급을 타 너무나 기쁘다며, 같이 일하는 여사님들과 회식을 했을 때 이런 걸 이렇게 늙어서야 해봤다며 지난 시간을 아쉬워했던 내 엄마. 본인의 이름으로 받은 돈을 뿌듯하게 여기며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며 미소를 짓던 내 엄마가 아프다. 엄마의 시간이 멈췄다.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엄마가 우리 집에 며칠 묵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그렇게도 건강해보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에 있으면서 손주들 먹을 것, 나랑 사위 먹을 것을 챙기고 싶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불안이 보였다.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흐를지 감이 잡히지 않아 두려워하는 엄마의 감정이 읽혔다. 왜 이제서야 엄마의 감정이 내 눈에 보이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엄마의 투병이 시작되자 엄마에 대한 내 생각, 내 이야기, 엄마 이야기 등 뭐가 됐든 글로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다짐으로 바뀐 건 순전히 엄마의 투병 때문인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엄마가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아득하고 슬펐다. 엄마에게 그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위로나 응원을 엄마에게 건네는 순간, 내가 꾹꾹 닫아놓은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지금보다 덜 아프기를, 그냥 이 말만 할 수 밖에 없네. 엄마, 오늘도 항암 부작용 견디느라 고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