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의 합병증
1. 이 약은 알파티옥트산(ALA)으로 이른바 신데렐라 주사의 성분입니다.
2. 지난주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우리 몸의 미토콘드리아는 (1) 영양분을 분해하면서 한 방울씩 나오는 전자(e-)를 차곡차곡 모아 (2) 안에 있던 수소 이온 (H+)을 밖으로 밀어내어 인위적으로 농도 차를 만듭니다. 이렇게 강제로 만들어진 수소 이온의 농도 기울기(낙차)는 (3) 세포의 배터리 ATP를 충전하는 기계를 돌리는 데 쓰였습니다. 마치 양수발전처럼 말이지요.
3. 당뇨 환자는 (1) 번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전자를 한 땀 한 땀 모으던 전자 전달계가 고혈당으로 입고되는 영양분이 너무 많아져서 과부하가 걸리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원래대로라면 수소 이온을 밀어내는 데 쓰여야 할 전자(e-)가 엉뚱하게 주변에서 구경하던 산소 분자에 턱 달라붙게 되고 산소 분자는 흑화 하여 ROS, 즉 활성 산소로 변신한다. 까지가 지난 이야기였습니다.
4. 불운하게 태어난 활성 산소는 마치 녹과 같이 세포의 구조물들을 좀 먹기 시작합니다. 세포막이나 혈관 내피 세포는 특히 손상을 많이 받는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몸도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산화물질을 중화시키는 물질, 즉 항산화 물질들이 있으니까요. 한데, 이런 항산화 물질들은 우리 몸에서 그리 많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건 문제입니다. (유행하는 영양제들이 다들 '탁월한 항산화 능력'을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5. 사실 항산화 물질의 원래의 명칭은 전자 전달 물질이라 불러야 더 올바를지 모릅니다. 전자를 쉽게 내어주고 반대로 쉽게 짊어질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우리 몸이 짐꾼으로 쓰고 있었으니까요. 흡연, 자외선, 매연, 노화, 고영양, 종양 등이 문제가 된 요즘에야 활성 산소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능이 부각된 것이지 실은 그렇게 많이 필요한 종족이 아니었습니다.
6. 항산화 물질이 역할을 하던 장소 중에 하나가 다름 아닌 미토콘드리아입니다. 전자 전달계에서 나온 전자 (e-)를 다음 단계로 옮겨주는 역할을 항산화 물질이 합니다.
7. 그래서 활성 산소로 발생한 녹을 없애느라 항산화 물질이 쓰이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밀려 들어오는 재료가 상하기 전에 얼른 처리해야 하는데 활성 산소 뒤치다꺼리 하는데 일꾼을 동원하니 얼마나 답답합니까? 이러다 보니 기다리던 포도당이 해당(glycolysis) 되지 못하고 다른 경로로 넘어가는 일이 생겨납니다. 첫 번째로 폴리올 경로라 하여 소르비톨을 생성하는 과정입니다.
8. 사실 소르비톨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바로 변비에 효과가 좋은 푸룬에 많이 포함된 당 알코올이거든요. 소르비톨은 ‘흡수가 되지 않고 장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고혈당에서 포도당은 폴리올 경로를 통해 소르비톨로 전환됩니다. 세포질에 푸룬이 들어가 부글부글 부어오른다 상상해 보시면 고혈당으로 세포가 얼마나 손상받을지 쉽게 상상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9. 두 번째로, 포도당이 기다리던 중에 단백질과 지질과 엉겨 붙는 일도 생깁니다. 슬프게도 이 과정도 우리에겐 익숙한데요. 바로 고기를 구울 때 생기는 마이야르 반응과 같기 때문입니다. 당화 최종산물(AGE)은 마치 찐득찐득한 캐러멜과 같이 조직에 들러붙어 기능과 탄력을 잃게 만듭니다. 특히 당뇨병성 망막병증과 신장병증에서 이 AGE가 골치 아픈 존재가 됩니다.
10. 이야기를 듣고 보니 원인이 활성 산소라면 항산화물질을 좀 더 보강해 주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는 산화스트레스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던 상태로 진화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항산화물질 중에서는 필요한 구역에 모두 충분히 다다를 수 있는 물질이 한정적이라는 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11. 예를 들어 모두가 아는 항산화제, 비타민 C나 글루타티온만 해도 항산화력은 강력하지만 물에만 녹는 관계로 지질 이중층으로 된 세포막을 통과하지 못하므로 문제가 되는 미토콘드리아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수용성) 지용성인 비타민 E (토코페롤)은 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어 기대를 모았으나 미토콘드리아 내부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코엔자임 Q10은 미토콘드리아 내부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농도까지 충분히 공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2. 다행히 이런저런 조건을 만족하는 항산화물질이 하나 있어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치료에 쓰이고 있습니다. 바로 서두에서 말씀드린 ALA, 알파 티옥트 산입니다. ALA는 위의 다른 항산화물질과 달리 수용성과 지용성 화합물과 모두 반응하는 큰 장점이 있어 세포막과 미토콘드리아의 내막을 통과하여 접근이 가능합니다.
13. ALA의 항산화 능력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어느 정도냐면 ALA는 다른 항산화물질, 예를 들자면 비타민 C, E, 글루타티온 등이 산화된 형태를 자신의 전자를 내어줌으로써 되돌려 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러니 항산화물질의 항산화물질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14. 결정적으로 ALA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전자를 한 땀 한 땀 옮기던 바로 그 짐꾼입니다. 전자 전달계에서 ALA는 전자를 담으면 환원형의 DHLA 형으로 변신하고 전자를 내어주면 다시 ALA로 변하는 식으로 H+를 미토콘드리아의 내막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PDH와 α-KGDH 경로 모두에 작용) 이론적으로 ALA는 당뇨병의 합병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15. ALA는 당뇨병성 다발신경병증(DSPN)에 효과가 있어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일차 치료제로 쓰입니다. 200mg을 하루에 세 번 먹을 수도 있고 서방형 제제 600mg을 처방하기도 합니다. 정맥 주사 형태도 가능합니다. 다른 치료제처럼 효과가 즉각적으로 발휘되지는 않지만 6개월 정도 꾸준히 쓰다 보면 스멀스멀 효과가 나타납니다.
16. 하지만 이런 ALA마저도 당뇨병성 신경병증 외에는 치료 효과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항산화 능력을 아무리 늘려준다 해도 활성 산소가 만들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리 일꾼을 많이 채용한다 한들, 일감이 줄지 않으면 결국은 악순환을 막아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더불어 망막병증이나 신장병증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경병증에 비해 좀 더 복잡한 메커니즘 (섬유화 등) 이 관여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17. 결국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는 고혈당을 조절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당뇨병성 합병증의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치료 방침이 혈당의 조절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18. ALA는 신통방통하여 당뇨병성 신경병증 외에도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기도 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신데렐라 주사는 ALA의 체중감소 효과를 강조한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라는 말씀을 드렸 듯 우리가 기대할 수 있을 수준의 감량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ALA는 세포막의 포도당 이동 통로인 GLUT-4를 더 많이 배치시켜 혈당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저혈당을 경험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약으로 쓸 만큼 일정한 효과를 보이지는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