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의 합병증
1. 오늘은 고혈당은 왜 하필이면 신경 세포를 골라 망가뜨리는지, 신경병증의 증상은 왜 우리 몸에서 먼 곳부터 대칭적으로 발생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 오메가-3을 설명하며 좋은 지방산은 산패되기가 쉬워 보관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내용, 기억나시나요? 다중 불포화 지방산 (Polyunsaturated Fatty Acid, PUFA)에 속하는 오메가-3는 분자 구조 상 지방산 사슬에 이중 결합이 여러 개가 존재하는 형태로 (그래서 이름에 ‘다중‘이 들어감) 꺾이는 부위가 2곳 이상 있습니다.
3. 이와 반대로 포화지방산엔 연결 부위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구조적으로 안정한 것은 포화지방산입니다. 버터나, 육류의 지방(비계), 치즈 등이 흐르거나 물컹하지 않고, 쥘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이유는 포화지방산이 많은 덕입니다. PUFA의 연결 부위는 산소와 쉽게 반응해서 화학적으로도 불안정합니다. 오메가-3가 연질캡슐에 포장되어 있고, 산소와 열, 빛에 접촉되지 않아야 하는 건 이런 화학 구조에 이유가 있습니다.
4. 우리 몸과 세포의 관계를 단순화한다면 물로 가득 찬 욕조(몸) 안에 기름(지질 이중층)으로 경계를 세운 물방울(세포)이 떠다니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는 친수성이고 꼬리는 소수성인 인지질이 앞뒤로 붙은 구조의 세포막은 세포외액과 세포를 구분시킵니다. 만약 이런 경계가 사라진다면 우리 몸은 물에 탄 단백질 셰이크처럼 변해버릴 것입니다.
5. 인지질의 내부 구조, 소수성 부위를 이루는 물질이 바로 지방산입니다. 위 그림에서 노란색 다리가 바로 위의 그림에서의 지방산을 나타낸 것입니다. 참고로 세포막에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문이 나 있어서 이 문을 통해 물질을 주고받습니다. 몇 번 반복해서 나왔던 GLUT-4는 바로 세포외액에서 세포 내부로 포도당을 흡수하는 관문이었습니다. SGLT는 소변으로 배출된 나트륨과 포도당을 동시에 재흡수하는 통로였습니다.
6. 흥미롭게도 조직마다 세포막을 이루는 지방산의 비율이 조금씩 다릅니다. 세포막이 지나치게 물렁하면 구조가 불안정해지고, 너무 딱딱하면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을 적절히 배합합니다. 예를 들어 적혈구처럼 안정성이 필요한 세포는 포화지방산 비중을 높여 벽을 견고하게 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혈관을 통과하면서 터지거나 변형되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7. 반대로 위에서 말씀드린 오메가-3와 같은 다중 불포화지방산(PUFA)이 많이 들어간 조직도 존재합니다. 예상하셨듯이, 다중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된 세포막은 활성산소의 공격에 취약합니다. 마치 오메가-3가 산패되기 쉬운 것처럼 말이지요. 고혈당으로 인해 손상받는 조직의 세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연성을 위해 흐물흐물한 다중 불포화지방산으로 경계를 세운 세포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경세포이고, 그래서 고혈당으로 신경세포가 많이 손상받습니다.
8. 신경세포는 빠른 신경 전달을 위해 세포막에 다중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유를 하자면 고어텍스 의류보다는 뜨개질로 만든 니트에 가깝습니다. 이런 구조는 빠른 신호 전달에 유리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발 끝에 난 상처가 머리로 전달되어 통증을 느끼고 빠르게 반사행동을 취하려면 막이 치밀하여 신호가 전달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숭숭 난 구멍으로 빠르게 신호가 전달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9. 활성산소는 신경세포의 세포막에 작용해 마치 오메가-3가 산폐되듯 인지질의 지방산을 산화시킵니다. (Lipid Peroxidation) 뼈대가 녹아 무너지니, 세포막에 끼여있던 문, 이온 채널이나 수송 단백질도 말 그대로 '구겨져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이 과정은 마치 오래된 목조 건물에 좀이 슬어서 서까래가 무너져 문틀이 찌그러져 열리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신호 전달에 오류가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10. 당뇨병으로 인한 신경병증이 우리 몸에서 먼 쪽부터 시작하고 대칭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도 지방산의 종류와 관련 있습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 환자는 증상이 일어나는 부위가 장갑을 낀 것 같다거나 양말을 신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호소합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신경세포의 구조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11. 우리 몸에서 가장 긴 신경은 척수에서 나와 발 끝까지 이어지는 좌골 신경입니다. 좌골신경의 길이는 1m에 이릅니다. (다리가 길면 더 길어짐) 그런데 이 긴 신경은 예상외로 여러 개의 세포가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진 게 아니라 한 신경 세포가 팔을 길게 뻗어 연결된 형태입니다.
12. 그러니까 좌골 신경을 이루는 신경 세포 하나의 길이가 1m가 넘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한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세포 자체가 길쭉해진 것이 아니라 가는 팔, 축삭 (AXON) 이 길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단일 신경원에서 긴 축삭이 연장된 구조, 머리카락 길이를 키로 쳐주는 것) 축삭 부위는 빠른 신호 전달이 무엇보다 중요해서 특별히 더 다중 불포화 지방산 (PUFA)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3. 미토콘드리아의 성능저하도 관련 있습니다. 신경 본체는 ATP를 생산해 내 축삭의 끝까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합니다. 이전에 다루었듯이 높은 혈당과 활성산소는 미토콘드리아의 ATP 생성을 제한하고 줄어든 ATP는 신경세포의 에너지 고갈을 야기해 적절한 신경 전달을 방해합니다. 본체에서 에너지가 덜 만들어지면 먼 부위부터 에너지가 부족해지기 마련입니다. ATP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결국 신경은 영구적으로 손상됩니다.
14. 정리하자면, 고혈당으로 인한 활성산소는 신경세포의 세포막을 녹슬게 만들어 구조를 변형시키고, 활성산소로 인해 ATP 생성이 감소되며 먼 곳의 AXON부터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지속될 경우 세포핵이나 미토콘드리아의 소멸로 이어져 결국 신경세포의 사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신경다발에 혈액공급을 하는 혈관의 내피세포가 고혈당으로 손상되면 혈류 공급이 줄어들고, 이로 인한 염증반응이 지속되며 신경 손상이 가속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