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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성 신경병증(3)

당뇨의 합병증

by 예재호

1. 오늘은 오랜만에 김여사가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2. 인슐린은 우리 몸에 들어온 영양분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안주인, 이른바 김여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비(뇌)로 쓰고 남은 영양분이 있으면 간에서 글리코겐(예금통장)으로 바꿔 수입이 없을 때(공복)를 대비합니다. 그러고도 돈(영양분)이 남으면 모두 적금(지방세포)에 넣어 허투루 쓰이는 걸 막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비(근육세포)엔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그래서 보디빌더들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인슐린 주사를 맞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해드렸습니다.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POEI-7AR2d?xmt=AQF0iqWo3COtd9_Jtwa2vwCXprvscm4EtAgyfkgICsHpGg


3. 김여사가 들어온 수입(영양분)을 관리하는 통로는 혈관입니다. 인슐린이 혈관 내피세포에 작용하면 혈관은 이완됩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내피세포에서 NO가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근육과 지방 조직으로 영양분을 한시라도 빨리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입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시락을 준비하는 수험생 어머니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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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 다룰 당뇨병성 자율신경병증(DAN)에는 인슐린의 혈관 이완 작용에 대한 반대급부 반응이 관련됩니다. NO는 강력한 혈관 확장제(Vasodilator)여서, 인슐린이 증가하면 '세동맥'이 확장되어 말초로 향하는 혈류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 결과 중심 동맥압이 낮아질 수 있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심박수를 높여 혈압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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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와 거의 동일한 기전으로 작동하는 약 떠오르지 않으세요? 정답은 가장 마지막에)


5.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교감신경이 상대적으로 활성산소에 취약하여 신경 손상이 먼저 진행되면서 교감신경의 흥분을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미주신경(Vagus Nerve)을 포함한 부교감신경은 신경 섬유가 작고(Small Nerve Fibers) 수초(myelin)가 얇거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피복이 얇거나 벗겨진 전선과도 같아서 활성산소(ROS)의 공격에 취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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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래서 당뇨병성 자율신경병은 초기에 교감신경의 과흥분과 관련된 증상(빈맥, 땀 흘림 증가 등)이 먼저 나타납니다. 교감신경은 스트레스나 위험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몸을 준비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땀을 많이 흘리며, 위산이 많이 분비되고 위장관 통과속도가 느려져서 더부룩합니다.


7. 물론 당뇨를 오래 앓고 신경병증이 악화되면 결국 교감신경과 운동신경도 손상됩니다. 뒤에서 다룰 저혈당무감지증이나 기립성 저혈압은 교감신경의 손상으로 촉발되는 증상으로 심각한 합병증 중 하나입니다. 운동신경이 손상되면 발 근육의 위축이나, 발 변형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감신경과 운동신경은 활성산소에 조금 더 견고한 구조여서 비교적 늦은 시기까지 기능이 유지되므로 진료실에서 흔히 마주치는 것은 아무래도 교감신경의 항진과 관련된 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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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교감신경 항진과 관련된 당뇨병성자율신경병증 중 심혈관자율신경병증(CAN)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교감신경의 항진으로 인한 심장 기능 장애는 당뇨병 환자에게 매우 흔합니다. 빈맥, 운동, 심호흡, 스트레스 등 외부자극에도 크게 변하지 않는 심장 박동수(HRV) 등의 징후가 있습니다. 심혈관자율신경병증은 심혈관질환 사망률, 부정맥, 무증상 심근허혈, 주요한 심혈관질환발생, 심근기능이상 등에 대한 독립적인 위험인자로 작용하고,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기에 무섭습니다.


9. 심혈관자율신경병증이 의심되면 자율신경계 검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호흡에 따른 심박수변동(heart rate variability, HRV검사), 발살바조작에 따른 심박수변동 및 기립 시 혈압변동검사 등을 소개합니다. 한데, 이런 자율신경계검사들은 일반적인 의원에서는 잘 시행하지 않습니다. 다만 의사들은 당뇨환자에게 지속적인 빈맥이 있다면 자율신경병증을 의심해 혈당 관리를 더 독려합니다. 혈압과 콜레스테롤 조절, 금연, 체중 감량, 운동 등이 중요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SGLT-2i 가 CAN 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10. 심장의 자율병증이 무섭긴 해도,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자주 호소하는 증상으로는 위장관 자율신경병이 가장 흔합니다. 위 배출 시간이 늘어나며 메스꺼움, 구토, 포만감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작은 양으로 식사 횟수를 늘리라는 생활 습관 조언을 하고 metoclopramide과 같은 위장관 운동 개선제를 처방합니다. 방광 수축력 저하로 인한 소변 정체도 흔합니다. 발기장애, 변비, 설사, 요실금 또한 자율신경병증에 속합니다.


11. 위장관 자율신경병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약제의 부작용을 먼저 의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당뇨약제는 위배출 시간을 늘리는 경향이 있으므로 혼동되기 쉽습니다. 자율신경병증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도 환자들에게 더 적극적인 혈당 조절을 위해서 약을 더 잘 먹어야 한다는 상충되는 제안을 하기가 까다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보다 전문적이고 큰 규모의 병원에서는 QSART(땀 분비 검사), tilt table, 심장 스캔(심근허혈 여부), 위배출 스캔(위마비), 방광 검사 등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12. 당뇨병을 앓은 기간이 늘어나면 앞에서 말씀드린 교감신경 장애가 일어납니다. 이때 저혈당무감지증 및 기립성 저혈압이 무섭습니다. ROS 등 독성 물질의 공격이 지속되어 교감신경 섬유까지 손상되면, 저혈당이 와도 경고 증상을 유발하는 신경 전달이 마비되어 저혈당을 느끼지 못합니다. 갑작스러운 실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뇌 손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13.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치료는 적극적인 혈당 관리입니다. 많은 연구와 가이드라인에서 당뇨병말초 및 자율신경병증의 치료에서 근본 원인인 혈당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혈당 조절이 제2형 당뇨병 환자의 경우 1형 당뇨병 환자만큼 확실한 효과를 보이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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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또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신경병증은 모든 당뇨인들이 앓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당뇨병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신경병증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며, 20년 이상 경과한 환자의 경우 50% 이상이 다양한 형태의 신경병증(말초, 자율신경병증 등)을 앓게 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신경 세포는 한 번 손상되면 재생 능력이 매우 제한적이고 아무리 혈당 조절을 잘하더라도 취약한 신경 섬유(특히 길고 작은 신경 섬유)의 기능적/구조적 손상은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퀴즈의 정답은 아래에 있습니다.

https://brunch.co.kr/@ye-jae-o/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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