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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성 망막병증 (1)

당뇨의 합병증

by 예재호

1. 이 약은 당뇨 합병증에 획기적인 치료 효과를 보일 것이라 기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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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은 맑은 물로 가득 찬 구슬과 비슷합니다. 열린 각막을 통해 들어온 빛과 상이 투명하고 무색의 유리체를 통과해 구슬을 감싼 망막에 맺히는 구조입니다. 이것은 마치 빔프로젝터에서 쏜 빛이 스크린(망막)에 비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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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눈알을 채운 젤리 같은 끈적끈적한 액체인 유리체(Vitreous Humor)가 혼탁해지거나 색을 띠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야에 검은 띠나 점이 떠다니는 비문증은 유리체 속 콜라겐이 뭉쳐 생긴 덩어리의 그림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출혈이 생겨 유리체에 피가 섞이면 세상이 갈색으로 보이거나 아예 검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4. 그러고 보면 유리체가 투명하게 유지되는 것은 꽤 신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영양분을 제공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데 쓰이는 혈액은 잘 아시다시피 붉은색을 띠기 때문입니다. 이건 그러니까 흙탕물을 받아 욕조를 채웠는데 목욕물이 투명하고 깨끗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는 게 아님에도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우리 눈에는 혈관과 내부를 나누는 특별하고 엄격한 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5. 전신을 순환하는 혈액을 그냥 받아쓰지 않고 엄격하게 걸러 필요한 것만 취하는 조직이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잘 알려진 뇌혈관장벽(BBB)이 있는 뇌이고, 다른 하나가 오늘의 주인공인 망막입니다. 이 두 조직은 혈액 속 잠재적 유해 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선택적 투과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장벽은 고도로 치밀해서 허가받지 않은 물질은 절대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6. 이야기가 옆길로 빠지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망막(retina)은 눈의 일부가 아니라 뇌의 일부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뇌가 발생 과정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형성된 중추신경계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혈관-망막장벽, 즉 BRB(blood retinal barrier)는 BBB와 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7. 혈관 내부와 외부를 엄격하게 나누는 장벽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해당 구역의 모세혈관은 내피세포끼리 매우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세포 사이의 틈이 거의 없습니다(Tight junction). 마치 수도관 이음매를 방수 코팅재로 단단히 막아둔 것과 비슷합니다. 거기에 모세혈관의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감싸고 지지해 주는 세포가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별 모양의 성상세포(astrocyte)와 주위세포(pericyte)가 바로 그것입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면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 누출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 만큼 제대로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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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별 모양의 성상세포(astrocyte)와 주위세포(pericyte)는 신경 교세포의 일종으로, 단순히 혈액 누출을 방지하는 포장재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혈류량을 조절하는 조율자 역할도 합니다. 활성화된 뉴런에 더 많은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모세혈관을 이완시키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이 시스템을 신경-혈관 단위(Neurovascular Unit)라고 부릅니다.


9. 예를 들어 뇌졸중이나 외상으로 인해 NVU를 이루는 신경교세포의 제어력에 문제가 생기면 모세혈관에서 평소보다 많은 누출이 일어납니다. 뒤를 이어 염증반응이 동반되면 뇌부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10. 미토콘드리아의 성능은 저하되는데 재료는 계속 들어오는 고혈당 상태에서, 처리되기를 기다리던 포도당이 다른 경로로 빠져나가던 상황 기억나시나요?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RJ1yaHAZ76?xmt=AQF0SMHXXlXYI_8TsVtjHVW5R077yHxff_0KqnmW3KtXEw


11.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옆길로 샌 포도당은 소르비톨과 당화 최종산물(AGE)이라는 대사물질로 변합니다. 이 두 물질은 생소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소르비톨은 자두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물을 많이 머금는 성질 때문에 변비 완화에 사용되고, AGE는 고기를 구울 때 탄수화물이 지방이나 단백질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생성(마이에르 반응)된다고 앞서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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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탄수화물이 소르비톨로 변환되는 과정을 ‘폴리올 경로’라고 합니다. 이때 관여하는 효소의 이름이 알도스 환원효소입니다. (Aldose Reduct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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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 알도스 환원효소는 1950년대에 이미 존재가 알려져 있었습니다. 눈의 수정체(Lens)에 풍부하다는 것을 연구자들이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이 알도스 환원효소가 눈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대사에 관여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눈의 수정체는 혈관이 없고, 대부분의 포도당을 인슐린과 무관하게 세포 내부로 흡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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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하지만 알고 보니 이 효소가 작동하면 포도당은 쓸모없는 소르비톨로 변신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항산화물질인 NADPH를 소비하는 탓에 삼투압 스트레스에 산화 스트레스까지 이중으로 가하는 고약하게 해로운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15. 소르비톨이 유독 많이 축적되는 세포들이 있는데, 역시나 이 세포들에는 알도스 환원효소가 풍부하게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세포들에 위에서 말한 NVU를 이루는 주 세포, 즉 성상세포(astrocyte)와 주위세포(pericyte)가 포함됩니다. 실은 앞서 다룬 것과 같이 뇌와 같은 중추신경계의 거의 모든 세포는 인슐린과 별개로 포도당을 흡수하는 관계로 알도스 환원효소가 풍부합니다.


16. 근육세포와 같은 일반 세포들이 인슐린의 신호를 받아 GLUT-4를 통해 포도당을 흡수하는 것과 달리, 뇌세포 등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포도당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포도당이 들어가는 통로도 다릅니다. GLUT-1이나 GLUT-3은 인슐린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작동하여 뇌가 안정적으로 포도당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고혈당이 되면 과잉의 포도당을 처리하기 위해 알도스 환원효소가 풍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POFEuuAVXm?xmt=AQF0SMHXXlXYI_8TsVtjHVW5R077yHxff_0KqnmW3KtXEw


17. 그래서 당뇨병으로 인해 혈당 수치가 높아지면, 과도한 포도당이 폴리올 경로로 유입되어 세포 내에 소르비톨이 축적되고, 이것이 삼투압 스트레스와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신경, 망막, 신장 등의 미세혈관 합병증을 초래한다는 이른바 폴리올 가설이 제시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알도스 환원효소를 억제하는 약을 개발한다면 당뇨병성 합병증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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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실제 동물 실험에서는 이러한 가설이 증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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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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