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의 합병증
1. 이 병은 불과 수개월 전까지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실명으로 진행되므로 정기적인 진료가 필수입니다.
2. 지난주의 이야기를 한번 더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1) 망막 혈관의 구조는 다른 장기와 다릅니다. 눈의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유해 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모세 혈관 내외부가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습니다.
2) 이 격리막을 혈관망막장벽(BRB)이라 부릅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첫째, 모세혈관 벽세포 사이 이음매가 단단히 메꿔져 누수가 방지됩니다. 둘째, 두 종류의 세포가 모세혈관을 한번 더 봉인하듯 감쌉니다. (성상세포와 주위세포)
3) 그런데 봉인하는 세포들이 유달리 고혈당에 취약합니다. 두 세포에서는 포도당이 폴리올 경로를 통해 소르비톨(푸룬의 주 성분)로 변하게 됩니다.
4) 소르비톨은 물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어 A와 B세포는 붓기 시작합니다(부종). 모세혈관을 단단히 감싸야할 세포들이 부어서 느슨해지면 혈관 벽에서 혈액이 누출되기 시작합니다. 마치 수도관을 붙잡고 있던 지지대가 녹슬어 떨어져 나간 탓에 파이프 사이가 벌어지듯이 말이죠.
3.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모세혈관 장벽(BRB)이 제 기능을 못 해서 유입되면 안 되는 것들이 눈 안으로 새어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그 결과 혈관 벽이 불룩 튀어나오기도 하고 (미세혈관류) 누출된 물질들이 켜켜이 쌓여 멍처럼 지저분해지기 시작합니다. 출혈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단계를 비증식성 당뇨 망막병증이라고 부릅니다.
4. 출혈이 일어나거나 삼출물이 쌓인 상태를 망막 부종이라고 부릅니다. 발목을 접질려 퉁퉁 붓는 것이 눈 안에서 벌어졌다고 상상하셔도 좋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으로 비교한다면 부종이 생긴 부위는 물을 먹은 스크린과 같이 상이 제대로 맺히지 않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부종이 생기는 위치가 중요합니다. 자막이 보이는 위치라던지, 맨 중앙의 연기자들의 얼굴이 나오는 부위와 같이 치명적인 위치에 물을 먹으면 시력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이를 황반 부종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입니다.
5. 시간이 지나 망막병증이 지속되면 이제는 신생 혈관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공급이 부족해진 부분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망막 일부 영역은 혈류가 감소한 탓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허혈상태라고 합니다. 허혈상태가 지속되면 고육지책으로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 단계를 증식성당뇨망막병증이라고 합니다.
6. 증식성망막병증은 조금 더 무섭습니다. 정상적인 혈관과 달리 신생혈관들이 매우 약하고 취약하기 때문에 쉽게 파열되어 출혈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처음부터 계획되지 않았던 길을 억지로 내다보니 신생혈관 주변은 지저분해지기 마련입니다. 지저분한 섬유조직은 수축하는 성질이 있어 주변 부위를 당기는데, 너무 심하게 당기는 바람에 얇게 붙어 있던 망막까지 떨어지는 견인망막박리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환들은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7.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포도당을 소르비톨로 변환하는데 필요한 효소를 억제하는 약제의 개발은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더욱이 소르비톨로 변환되는 과정에서는 항산화물질 NADPH이 많이 낭비되므로 그 과정을 막게 되면 항산화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8. 그런데 아쉽게도 동물 실험에서는 약효가 증명되었음에도 막상 환자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폴리올 경로를 억제하면 추가적인 세포 손상은 예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발생한 증상을 개선시키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현재 처방이 가능한 유일한 알도스 환원효소 억제제인 일본의 에팔레스타트마저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에만 처방이 가능하고 당뇨병성 망막병증의 치료제로는 권해지지 않습니다.
9. 이것은 망막병증이 소르비톨 과다 생성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기전이 작용한다는 점, 망막으로 약물을 전달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점 때문입니다. 특히 혈관-망막장벽은 아무리 당뇨로 망가졌다 해도 충분히 견고해서 약을 잘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몸에 좋은 것이라도 먹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것은 뇌질환을 타깃으로 한 신약 개발이 어려운 까닭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ARI는 좋은 기전에도 불구하고 신경병증에만 제한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10. 당뇨망막병증의 발생은 당뇨병을 앓은 기간과 연관이 있습니다. 2010~2012년 제5기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연구에서, 당뇨 진단 당시에는 1.9%, 유병기간 5년 이내에는 14.6%, 유병기간 6~10년에는 22.9%, 유병기간 11년 이상에서는 40.1%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7년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안과학회가 공동으로 시행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40세 이상 대한민국 성인 당뇨병 환자 중 당뇨망막병증의 유병률은 19.6%로 1/5의 당뇨환자는 망막병증이 동반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11. 그런데 합병증 확인을 위해 안저검사를 받아본 사람은 정작 23.5%에 불과해 당뇨망막병증이 있음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환자가 대단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 초기 병변인 비증식성 당뇨망막병증은 대부분 증상이 없고, 시력은 당뇨망막병증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으므로 병의 지표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난 아무렇지 않은데?', '잘 보이기만 하는데?'라고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상당히 진행된 환자도 좋은 시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붓는 위치가 중요해서 초기 망막병증 환자라도 황반에 부종이 생기면 시력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13. 반면에 증식성 망막병증은 증상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안구를 채운 물인 유리체는 맑고 투명해야 깨끗하게 볼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지저분해지면 즉각적으로 시야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유리체출혈이나 견인망막박리 등이 발생하여 비문증, 광시증(시야에 빛이 번개와 같이 번쩍거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시력저하가 자주 동반됩니다.
14. 망막병증에 대한 치료약이 없으므로 정기검진과 추적관찰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괜찮다 싶어도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안과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증상이 발생한 뒤에 안과를 찾으면 이미 비가역적인 상태가 되어버려 치료가 어렵습니다.
15. 증식성 망막병증을 진단받았다면 더 자주 안과를 가야 합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갑자기 실명을 피하기 어렵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우시는 환자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또한 임신은 망막병증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므로 최소한 3개월에 한 번 안저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16.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치료는 역시나 혈당 및 혈압, 지질 관리 그리고 금연입니다. 비극적 이게도 당뇨병의 유병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혈당을 엄격하게 조절하면 분명한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혈압과 지질 관리 또한 중요합니다. 모든 당뇨병의 미세혈관 합병증에서는 금연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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