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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성 신장병증 (2)

당뇨의 합병증

by 예재호

1.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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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뇨는 어떻게 신장 기능을 떨어뜨리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3. 포도당은 우리 몸에 매우 귀중한 자원이라, 사실 소변으로 한 방울도 나가서는 안됩니다. 한데, 혈액에 포도당이 너무 많이 섞여버리면 사구체의 여과력을 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이른바 단 오줌, 당뇨의 시작입니다.


4.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 신장은 1) 피를 거르는 망이 있고 2) 망에 걸러진 원뇨에서 야금야금 필요한 것만 (상황에 맞게) 다시 뽑아내어 재흡수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촘촘한 사구체를 넘어 도망친 포도당을 다시 붙잡아 오는 일을 전담하는 파트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일도 엄청 잘해서, 여과된 포도당의 90% 이상을 재흡수합니다. (그만치 포도당이 우리 몸에 귀한 것이라는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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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데, 사구체 담을 몰래 넘어간 포도당을 잡아(재흡수) 오는 일은 손을 쭉 뻗어 포도당 뒷덜미를 잡아 오는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항상 나트륨이라는 브로커를 써서 영양분과 엮어 함께 들여와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자면 마트에서 설탕만 단독으로 살 수 없고 꼭 소금까지 함께 사야 하는 식입니다. 이걸 두고 나트륨-포도당 공동 수송체 (Sodium-Glucose Co(Linked) Transporter, 즉 SGLT)라고 부릅니다.


6. 첫 번째 문제가 여기에서 생깁니다. 설탕만 필요한 손님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소금도 하나, 둘 사가다 보니 막상 나중엔 나트륨이 부족한 결과로 이어지는 겁니다. 소변에 나가야 할 나트륨에 한참 모자라다는 걸 확인한 치밀반(사구체 이후 신장 부위)이 '앞에 애들 일 안 하냐!'라고 호통칩니다.


7. '짠 내 부족'을 여과량 감소 탓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설렁설렁 일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신장은 걸러지러 들어오는 파이프(수입 세동맥) 최대로 열고 사구체로 하여금 "더 열심히 걸러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것이 바로 '고혈당으로 야기된 사구체 과여과'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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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더불어 치밀반은 '혹시 몸에 물이 부족해서 만들어질 소변도 부족한가?'라는 그릇된 판단을 내리고 레닌을 분비하게 지시합니다. 레닌이 분비되어 RAAS가 시작되면 일은 더 복잡해집니다. 나가는 파이프(수출 세동맥)를 좁혀버려 '앞에서는 밀려들고 뒤는 꽉 막힌 사구체'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합니다.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OX4hFIgdZW?xmt=AQF0UlYoo5a7-fO68eNBpX3mdkMrbMYbtx_h_Gws_kmf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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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두 번째 문제를 설명드리기 위해서는 신장의 구조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합니다. 사구체는 3중 막 필터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막은 차례대로 모세혈관 내피세포 - 사구체 기저막 - 발세포입니다. 정상인의 혈액은 이 3중 막 필터로 만들어진 길고 가는 터널을 통과하며 정수됩니다. 혈액이 지나는 모세혈관 벽은 1차 거름 막 역할을 하고, 사구체 기저막은 음이온 필터와 비슷한 역할을, 마지막 발세포는 사이에 난 가는 틈새를 통과한 물질들만 소변으로 내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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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모세혈관 벽이나 발세포의 틈 구조는 그림으로만 봐도 대충 어떤 역할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생소하여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사구체 기저막(이하 GBM)입니다. 사구체 기저막은 세포는 아니고, 모세혈관 내피세포와 족세포가 반반씩 만들어 낸 물렁물렁한 콜라겐 젤리와 비슷한 조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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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영화에서 보면 이 공간으로 넘어가는 벽에 손을 가져다 대면 물컹하는 느낌으로 그 너머로 손이 들어가는 장면 있잖습니까? 바로 그것과 비슷합니다. 이 젤리조직을 넘어 소변으로 빠져나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첫째, 젤리 틈을 비집고 소변으로 나가야 하니 당연히 사이즈가 작아야 하고, 둘째. 독특하게도 음전하를 띄면 안 된다고 합니다. GBM 이 음전하를 띄고 있어서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음전하를 띈 알부민을 밀어내는 역할을 해 단백질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을 막습니다.


harry.png 알부민 = 머글


12. 그런데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면 이 3중 구조 모두에 문제가 생깁니다. 일단 GBM이 말랑말랑한 콜라겐 젤리에서 딱딱하고 퍼석퍼석하고 두꺼워진 고무처럼 변합니다. 바로 글을 시작하며 보여드렸던 바로 그 사진의 반응입니다.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RJ1z9OgVYc?xmt=AQF0BgH73-U2UwKWJVC8tpVVQhVFKatET4bJHFIhwRu4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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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너무 과도하게 유입된 포도당이 해당과정을 밟지 못하고 다른 길로 빠지던 두 가지 경로 중 하나, 바로 마이에르 반응과 유사했던 캐러멜 화, 최종당화산물 AGE (Advanced Glycation End products)입니다. 혈장에 높은 농도로 섞여있던 혈당이 3중 필터를 지나가다 콜라겐과 결합해 버립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물질들이 숭숭 빠져나갑니다.


14. 이 탓에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나 단백질입니다. 소변에서 단백질이 검출되는 것은 포도당이 빠져나오는 것만큼 심각한 일이라 신장에서는 다시 비상상황에 돌입합니다. 예상하셨듯이 이 비상상황은 또 다른 신장의 손상으로 이어집니다.


15. 모세혈관 내피세포도 당연히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혈관 벽과 마찬가지로 고혈당과 활성산소로 사구체의 모세혈관 내피세포는 이미 아슬아슬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앞서 과여과가 시작된 사구체 상황 기억나시나요? '설렁설렁 일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한껏 늘려 버린 수입세동맥과 항진된 RAAS 탓에 모세혈관 내부 압력이 크게 늘었습니다. 안 그래도 약해진 모세혈관 벽에 압력까지 더해져 죽죽 늘어나버리니 거름막이 훨씬 듬성듬성 해지고 나가면 안 되는 것들까지 나가기 시작합니다.


16. 3중 막 중 가장 촘촘한 틈 역할을 하던 발세포의 운명은 더 가혹합니다. 발세포는 안타깝게도 한번 손상받고 나면 잘 재생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발세포가 압력을 견디다 못해 하나둘 떨어져 나가면, 그 틈으로 단백질들이 봇물 터지듯 빠져나갑니다.


(계속)


[정정]


어제의 글 BUN, Creatinine, GFR 에서 GFR의 설명에서 오류가 있어 바로 잡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구체 여과율의 변화를 '하루에 혈액이 신장을 순환하는 횟수'로 비교하여 계산하였으나, 실제 신장은 혈액 자체를 여과하는 것이 아니라, 혈액 중 혈장 성분의 약 20%(여과 분율)만 사구체 필터를 통해 여과하므로 총 여과량을 혈액량으로 나누어 순환 횟수를 계산한 것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GFR 100ml/min의 경우 우리 몸의 피는 하루에 30번 가까이 신장의 거름막을 들락날락 하는 셈입니다." 라는 계산이 틀립니다. 이어지는 15ml/min의 신장병증 환자의 피가 4번 걸러진다는 것도 심하게 과소평가 된 결과입니다. 정상인의 신장을 통과하는 일일 혈액량은 1,700L 에 이르니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340번 신장을 순환합니다.


수치 계산의 오류로 인해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만, '정상인에 비해 신장병 환자의 여과 능력의 비율(100 vs 15)'은 변함이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실수가 없도록 더욱 신경써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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