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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Oct 26. 2024

학습된 무기력

10월 19일의 기록

 어김없이 토요일이 찾아왔고, 어김없이 정전 또한 찾아왔다. 지난번에 정전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또다시 정전이라고 한다. 내 기록을 찾아보니 9월 28일날도 정전이었다. 3주만에 또다시 정전인 것이었다. 우리 부대는 전국의 모든 군부대 중 가장 시설이 안 좋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 있는 모든 군부대 중에 가장 후방에 위치해있다. 정전이 되는 순간 사람들이 사라진 것 같은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좋다. 냉장고의 윙윙거리는 소리고 갑자기 끊기고 완전한 조용함으로 침묵의 단계가 전진한다. 그러나 정전은 여러가지 번거로운 점이 많다. 어째서인지 정전이 되면 화장실의 물도 내려가지 않는다. 단순한 기계인줄로만 알았더니 어딘가에서는 전기를 쓰고 있는 걸까. 또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할 수도 없고 오늘같이 흐린 날은 너무 어두워서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가장 싫은 것은 정전이 된다고 위에서 선언해버리면 그것에 대해서 나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정전이 된다고 통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이건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주 정전이 되고 자주 단수가 되더라도 집에 사는 사람이 집을 팔고 나가버릴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는 그런 점이 싫었다. 전기충격을 받아도 피할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 실험용 쥐는 이런 기분일까? 알 수 없는 불쾌감이 극심했다.

 무채색의 오후에는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마작게임을 같이 했다. 훈련소가 끝나면 같이 자주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결국 이번이 입대 후 처음 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 목소리도 듣고 내가 좋아하던 게임도 하니까 너무 재미있고 사회에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여기에서의 생활도 분명히 할만하고 꽤나 편안한데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도파민이었다. 운빨게임이 주는 원초적인 재미와 친구들과 서로 놀리는 맛에 내 광대뼈는 내려갈 줄을 몰랐다. 그런 쾌락은 하위 단계의 쾌락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혈관에 도파민을 주사로 때려붓는듯한 이 감각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즐겁게 주말의 게임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 화면에 삼성로고가 뜨면서 핸드폰이 꺼져버렸다. 핸드폰 충전을 못한 채로 배터리 소모가 큰 앱들을 실행시키다보니 폰이 꺼져버린 것이었다. 달콤한 꿈에서 깨듯, 정전이 일어나듯, 한 순간에 뚝 끊긴 꿈을 뒤로하고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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