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했듯이 나에게 19년은 가장 우울했던 시기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1년이 지났고, 어영부영 자격증 혹은 취업을 핑계로 카페에서 시간을 축내곤 했다. 당시에 나에게 남은 행운은 가만히 있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아마, 내면의 무언가에 대한 기제가 발휘되거나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받은 무언가가 발휘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 삶이 곤두박질치면 나는 일상에 무언가를 더하려고 애를 쓴다. 19년이 지나고 20년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고 나는 산책하기를 시작했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광덕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해발고도 208m다. 걸어서 올라가는데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나는 어느 날 봄, 어느 순간부터 이곳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 거리가 가늠이 안되고 내가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없으니 나는 그저 헥헥거리고 올랐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겨우겨우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날, 더 힘들었다. 이제는 얼마나 걸리는지 아니까 막연할 때보다 더 두려웠다. 그런 마음을 가득한 채로 올랐다. 그렇게 산에 오르기가 서서히 자연스럽게 되었고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여름이 되었고,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나의 행운은 다시 무언가를 더하기를 바랐다.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 중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학원 일이다. 이리저리 일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구한 곳이 이곳이다. 면접은 오후 2시에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면접이 끝난 후에 기억에 남는 건 내 고등학교 시절의 한 장면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반장도 부반장도 싫어 서기가 되었다. 서기는 출석부를 담당한다. 당시의 나는 누구보다 제일 먼저 학교에 등교했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거리는 불과 5분 정도였고 나는 그 거리를 남들보다 먼저 갔다. 가끔씩 문이 안 열릴 때도 있다. 그러면 교무실 앞에 서서 선생님을 기다린다. 교무실 불이 켜지면, 나는 출석부를 챙긴다. 그리고 교탁에 올려두면 매 교시마다 선생님들이 출석부에 사인을 한다. 그리고, 끝나면 다시 교무실에 가져다 둔다. 가끔씩 선생님 대신 칠판에 필기를 한다. 주기적으로 출석부에 사인을 하지 않은 선생님께 가서 싸인을 요청하고 출석부를 채우는 일을 한다. 어느 날 나는 반장과 여러 교무실을 찾아 사인을 받으러 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창문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런 날이다. 평범한 그런 날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해가 지고 옅은 구름과 주홍색으로 가득한 하늘빛, 땅 아래에 뛰노는 아이들, 평화로움 혹은 무심함. 고등학생이던 날에도, 일을 시작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날에도 어떠한 감정인지는 모른 채로 내가 바라본 운동장이 떠오른다. 그 이미지는 이 일을 시작하라는 무언의 신호이다.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미지가 마음에 강렬하게 박혔다. 일을 시작했고, 나는 남들보다 많이 느리다고 생각했다. 처음 광덕산을 오른 날처럼 그렇게 시작은 볼품없었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다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물론 나 스스로는 떳떳해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나 노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을 시작하고 부단히 노력했다. 강의를 보고, 강의의 내용을 따라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듣고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때론 장난스레 스리슬쩍 본인의 마음을 전달한다. 그럼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받아 드리고 무언가를 내뱉어야 한다. 이 일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는 웃으면서 대답할 것이다 그저 수도사와 같다고. 똑같이 책을 읽고 책을 믿으며 어설프게 설교하고 모든 고해를 듣는다. 그러나 딱 하나가 다르다면, 모든 잘못을 아이에게 두는 것이다. 그렇다. 거짓된 신을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