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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인간

쓰는 인간

by 이공칠

나는 무언가를 써야 한다. 쓰지 않는다면, 나라는 존재는 껍데기만 인간인체, 자기혐오에 빠지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은 쓰는 것이다. 그리고 쓰기 위해서 생각한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다. 이전부터 나는 무언가 쓰고 싶었다. 어떠한 형태로든 나를 남기고 싶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시작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가 이렇게 기록하고 남기는 일을 하는 이유다. 어딘가에 적어놓았을 것이지만, 하나의 주제를 담고 쓴 적은 없어 이렇게 쓴다. 나는 위대한 백 마흔 일곱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리고 늘 내가 이룬 것들은 내가 상상하거나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는 맹렬하게 나의 사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 나의 사명은 ‘글쓰기’이다. 아주 숭고하고 중요한 일이다. 나는 서머싯 모움이 말한 위대한 백 마흔 일곱 사람이 되기를 열렬히 바란다. 위대한 꿈을 가지고 위대한 작품을 가진 그러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딱히 언제부터인지 기억하지는 않는다. 아마 내 일기를 겸하는 독후감을 찾아보면 나올 것이다. 이는 추후에 정리하도록 하겠다. 어느 날 카페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글을 쓰자고.


커피 향이 짙고, 하루에 한 번씩 직접 커피콩을 로스팅해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그런 곳이다. 나는 이곳에 아침 11시에 도착한다. 늦을 땐 12시가 넘어갈 때에도 있지만, 대개 그런 경우 마음에 드는 자리가 없다. 마음에 드는 자리는 창가 쪽 자리이다. 카페에는 창가 쪽의 자리가 4개 있다. 카페는 어떤 전문학교에 딸린 부속 건물로 주 고객들은 학생들이다. 그래서 눈치 없게 오래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11시에 도착하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 30분에서 1시간 지나고 보면 친구가 와서 맞은편에 앉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있지만, 각자 정해진 일을 한다. 친구는 가끔씩 영어 공부를 하고, 역사책을 읽는다. 그렇다고 토익을 준비하거나 한능검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 그곳은 서로 할 일들을 찾지 못하고 최악을 고르거나 차악을 고르는 일들 뿐이다.


나는 그렇게 그곳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게 내가 고른 것이었다. 시간은 오후 3~4시이다. 딱히 돈 나올 때는 없고, 그렇다 보면 서로 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거나 아니면 가끔씩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실 때에도 크게 말은 없다. 당시의 나는 소주 한 병을 마시면 더 이상 마실 수 없었다. 아마 귀가 본능이지 않을까? 혹은 그 이상은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신호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났다.


나는 나의 사명을 카페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공간은 당시에 나에게 중요한 공간이어서 남겨야 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 학과에 대한 뜻이 사라지고 그저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다. 반발 심리인지 학교에 대한 마음과 학과에 대한 마음은 멀어진다. 모두 다 멀어지진 않았지만, 애써 거부했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염세주의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무언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는 그런 사람, 그런데 그러한 시도는 없고 늘 입만 벌리고 열매가 떨어지길 기대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 그런 날이다.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 가야 한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애써 들쳐 매고 늘 가던 길을 걷는다. 학교 정문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고 손을 뻗는다. 그리고 우연히 내 왼손을 무심하게 쳐다본다. 나는 왼손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분명히 나의 손이다. 그런데 이 손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냥 평범한 손이 아닌 무언가가 숨겨진 그런 위대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왼 손바닥을 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한 번 쳐다보니 그때와 같지 않는다. 이제는 너무 평범하다. 혹은 나라는 사람이 내가 기대한 무언가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왼손의 그 문양들을 보고 더 큰 이질감을 느낀다. 나의 것인데 나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내 왼손바닥과 손등에 이름을 붙였다. 풀립&플롭이라고 이름을 만들었다. 당시 전공과 관련된 수업에 연관이 있기도 했고 또 당시에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기에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 왼손에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내 왼손을 믿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왼손은 더욱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당시 날씨가 가을이고, 이제 서서히 무더위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햇빛이 있는 곳이라면 내 왼손바닥을 펼친다. 그래서 따스함을 느낀다.


아마 내 왼손을 만난 그날이 나의 사명을 받은 날일 것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나는 그 왼손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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