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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콘파냐 Sep 26. 2024

EMS가 반송되었다.

뭐라도 뭐든지 보내고 싶은 마음...

짐을 쌀 때 한국음식 안 가져가도 된다고 몇 번이나 한결같이 대답하길래 내 맘대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는데 막상 가보니 기숙사 급식이 부실한 데다 아침은 너무 간단하고 심지어 주말에는 브런치 개념으로 늦은 점심과 저녁의 2식만 줘서 하루 세끼를 먹던 아이는 아침을 따로 챙겨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언젠간 먹겠지 싶은 마음에 몰래 밀어 넣었던 아이들이 제법 빠른 시간에 등장을 한 셈이다. 나름 "거봐, 엄마가 잘 챙겨줬지?" 싶다가도 밥상의 너무 많은 여백에 계속 눈길이 머문다.

솥밥 옆에 나물, 생선 반찬 몇 가지 놓아주고 싶고 분명 저 조합을 상상하며 햇반과 자장소스를 보냈지만 막상 덩그러니 놓인 모습은 내가 바랬지만 바라는 모습은 아니었다.

평소 햇반을 안 먹는 우리 집에 친정엄마가 맛보라고 두고 가신 햇반 솥밥 2개가 선반 한구석에 꽤 오래 있었다. 설마 먹겠어? 싶은 마음과 어차피 여기 있어도 손이 안 가는데 싶은 마음에 넣었던 솥밥인데... 아이는 너무 마음에 들어 한다.


 "엄마, 10월에 엄마올 때 햇반 말고 솥밥 좀 더 갖다 주세요"

뭐가 필요하다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딱히 안 하는 아이라 (분명 먹고 싶을 텐데 괜찮은 척 참는듯하지만) 언제 아이에게 닿을지 모르지만 일단 바로 온라인으로 솥밥 종류를 공부한 후 주문까지 완료했다.


"엄마 올 때 누룽팝 갖다 주세요"

주차비를 대신해서 급하게 마트에서 집어온 과자 2 봉지가 있었다. 여름방학 때 학교 자율학습 가는 아이 편에 마침 차에 두고 내렸던 과자를 한 봉지 보냈는데 친구들에게 인기최고였단다. 어디서 사냐며 사진까지 찍어가고 엄청 맛있게 먹었다고 했었는데... 그 추억이 그리운 걸까, 차라리 그냥 그 맛이 그리워서였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음날 바로 그 마트를 다시 갔다. 입구에 프로모션으로 팔더니 몇 개 안 남았단다. 결국 그나마 부서지지 않은 3 봉지 겨우 골라서 귀하게 끌어안고 왔다.


"고구마말랭이도 갖다 주세요"

톡을 보고 바로 쇼핑몰 검색에 들어갔다. 소분되어 있으면서 성분 건강한 말랭이로 신중 또 신중히 골랐다. 늘 올라오는 급식 사진이 냉동에 통조림에 두꺼운 빵이 대부분이라 말랭이 하나라도 좋은 걸 주고 싶은 엄마맘은 그렇게 말랭이 검색에 삼십 분을 넘게 쏟고는 신중히 주문버튼을 눌렀다.


아침 요구르트에 말아먹을 소분된 견과류, 뜨거운 물 부어서 불려 먹을 소분된 누룽지는 엄마픽으로 준비하고.


창문에 방충망이 없어서 아래층이 급식실이라 환기한다고 창문을 열면 파리가 들어와서 창문을 못 열겠단다. 들어온 파리도 옆방 친구가 가끔 잡아줘서 그나마 다행이라길래 창문 사이즈 물어서 벨크로로 부착 가능한 방충망 구입!


바닥 먼지와 머리카락등을 매일 청소할 빗자루가 필요하다길래 야심 차게 usb 충전식 미니 핸디 청소기도 구입!


수저세트에 뚜껑 있는 플라스틱용기까지 넣고 야무지게 박스 닫아서 우체국으로 향했다. 급한 거 아니니까 엄마가 올 때 들고 와주면 좋을 것 같다는데... 차마 한 달 반이나 남았는데 그냥 있을 수 없기에 깜짝 선물 겸 조용히 보냈다. 우체국 3호 박스는 기본 3킬로까지가 6만 원대이고 무게가 넘으면 추가비용이 든다. 우리 박스는 4.2킬로라 8만 원인데 온라인 사전 예약은 5% 할인이 되어서 77,000원에 보냈다. 가격이 비싸서 일주일 넘게 망설였는데 그래도 보내주자는 남편과의 결의에 찬 눈빛 교환에 힘입어 큰맘 먹고 EMS를 처음으로 이용했다. 박스 패킹할 때 편지 넣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남편말에 무게 나가면 돈 드니까 박스에 쓰자 해놓고 깜빡했다가 마지막에 창구에서 부랴부랴 한 줄 깨알같이 겨우 남겼다. 박스 버리기 전에 발견이 할는지...


배송이 거부되다

뿌듯하게 잊고 있던 어느 저녁, 뜬금 문자가 왔다.

순간, 온라인 접수에서 급하게 넘기던 경고 페이지 중 탑재 금지물품으로 인한 배송 불가시 본인이 책임진다는 뉘앙스의 문구를 본 듯하여, 박스 안 물건보다 배송비가 걱정이었다. 미니 청소기를 분리해서 보내는 거라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안의 배터리가 문제였던 듯했다. 다음날 오전,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고 바로 달려갔다. 집에서 미니 빗자루 한 개 챙기고. 가는 길에 다이소 들러 세탁용 솔, 찌든 때 세탁용 펜세제, 약국에서 여드름 연고 사서 우체국 도착, 노란 테이프와 경고장이 붙은 박스가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노란 테이프의 흔적이 있으면 또 오해받을까 봐 깨끗이 없애고 박스를 열어 미니청소기를 꺼냈다. 남은 공간에는 추가된 아이들을 넣고 다시 밀봉해서 접수를 했다. 다행히 인천공항에서 우체국까지의 우편비 4,500원만 지불하면 되었고 무게가 전과 비슷해서 금액은 77,000원으로 동일했다. 앞 박스가 4.2kg이었고 이번 박스가 4.089kg인데도 금액이 동일하길래 순간 박스를 열어서 다이 천 원짜리 세탁펜 꺼내서 3킬로 후반대로 맞추고 싶었으나... 꾹 참고 결제하고 돌아섰다. 차에서 우체국 사전예약 페이지 들어가서 이리저리 눌러보니 4킬로부터 4.5킬로까지는 동일 금액이다. 500g 단위로 가격 차이가 생기는 듯.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는 500g의 혜택을 알게 누려야지!


다행히 두 번째 박스는 항공기에 잘 실렸다고 방금 문자가 왔다. 부디 딸아이에게 반가운 손님이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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