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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살공주 Oct 18. 2024

하얀 종이배의 꿈

산골 소년의 노래

하얀 종이배의 꿈......  [드림메니아의 노래]

초등학교를 다니던 저학년시절,  봄날 모내기 할 때쯤이면 신작로 길옆에는 아래 녘 논으로 흘러가는 봇도랑이 있었다.  모내기 시작하기 전이면 어른들은  그 봇도랑을 손질하여 물이 도란도란 낮은 논바닥으로 흘러가게 하였다. 그 봇도랑에 물이 흐를 때면 항상 우리들은 종이배를 접어서 띄우거나 수수깡을 껍질을 까 그 속에 하얀 속이 남는데 하얀 것을 엮어서 배를 만들어 띄우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배 놀이는 학교를 오며 가며 봄날의 놀이 치고는 최고의 놀이였다. 물살에 기웃 둥 거리며 흘러가는 그 모습을 계속 따라가며 보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그 자체의 재미도 있었지만 그 도랑물을 저 어딘가 끝까지 따라가면 아마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어마어마하게 존재할 거란 생각이 강했기에 엄청난 호기심들이 함께 떠 내려갔다. 호기심과 진지함 둘 다 중요하게 작용했었다.


그 당시 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강해서 산 머너 저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을 앞에 나가 냇가를 바라보면 냇물은 아래쪽으로 한참 꾸불거리며 흘러가다가 산자락 뒤로 뱀처럼 꼬리를 감춰서 그 아래쪽으로 궁금한 게 많았다. 어머니에게 여쭈어,도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물은 흘러서 강으로 가고 강은 흘러서 바다로 가는 것은 사회 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따라가 보거나 경험했던 것은 없었다. 다만 세상에 대한 것은 학교 입학 전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서울의 창경원 동물원이나 거기에 회전목마를 태워 줬던 정도와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아버지의 이북, 고향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초등학교 일 학년 봄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바깥세상은 다 호기심 투성이었고 그 알고 싶음을 어쩌면 종이배를 띄우는 것으로 대신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수도 있었다. 나는 항상 물 따라 얼마 못 가서 젖어 풀어지는 종이배를 수수깡배 보다 더 좋아했다. 종이배를 접기 전에 항상 공책 종이에다가 내가 꿈꾸는 소망을 잔뜩 그리거나 써 놓고 접어서 띄우는 게 너무나 좋았다. 그 종이는 물에 젖어 흐늘거리며 금방 가라앉지만 내가 소중하게 적은 꿈들은 그 물살을 따라 냇물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 무형의 배로 떠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천등산 두메산골의 한 집안의 가장이어서 중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식구들 연명과 두 동생들 뒷바라지로 열네 살 때부터 날품을 팔았다. 그래도 파란 꿈이 있어 힘들 줄 몰랐다. 더러 일이 고단 할 때면 청아한 목청으로 시골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 밑마탕에 깔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때 어려서 힘들기만 한 시골의 지게질이나 밭갈이로 유년 자체가 짓눌려 갈 때 노래가 동무였고 밤에는 아무거나 읽을거리의 독서가 유일한 낙이었다. 독서는 사춘기를 거 친일로 넘기는 내게 꿈을 분명하게나마 형성해 준 거였다.

그때의 꿈들이 지금 희미하긴 하지만 이미 동화책으로 만난 톰 아저씨의 미국남부, 엄마 찾아 삼만리의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 소공녀 소공자의 저 유럽, 성서 이야기의 중동 등은 인식하고 있었기에 꿈도 많았고 어느 곳이든지 가보고 싶었다. 그때부터 접은 종이배 띄우기가 너무도 흥미 넘치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드림마니아의 소질이 농후했던 것 같다. 자연스레 꿈과 포부는 원대해져서 가끔 천등산 정상에 올라가 먼 곳을 오래도록 살펴보며 호연지기도 키웠다.  산 넘어, 산 너머에 또 산만 보였고 그 뒤로도 흐린 산들의 준령만 있어서 가슴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때 난 천등산 정상에 섰으므로 천등산 봉우리보다 내가 내 키만큼 천등산 보다 더 컸다. 따라서 내 꿈도 천등산 높이보다 더 컸던 것이다.


나중에 열여덟 살이 되던 추수를 끝낸 가을날, 어머니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집을 뛰쳐나와 무전취식으로 노동을 팔면서 제주도를 향해서 무작정 남부로 내려가기도 했는데 아마도 일본으로 밀항선을 타기 위해서였다. 15일 동안 정확하게 목포까지 갔었다. 열여덟 살 때의 일이었고 나는 국제적인 거지를 희망하며 밀항을 시도하기 위해 갔던 것이다. 그런 일을 도모했던 것은 독서로 만난 안문젠과 스콧, 힐러리와 텐진, 콜럼버스 등을 읽으면서 그들을 동경해 마지않아 그렇게 무서운 꿈을 도전하기도 했는데 그게 다 종이배를 띄우고 놀던 그때부터 싹이 텄던 것이다. 정말 세상을 휘젓듯이 다니고 싶었다.


사실 집사람과 결혼을 하기도 전, 연애를 하면서 세계의 아름다운 절경의 화보집이나 세계여행 화보집을 선물하며 일생에 지구촌 일주를 서너 번 정도 할 거,라고 뻥을 치며 청혼을 했었다. 무모하리 만치 대단하게 덤벼든 것도 아마 그 종이배를 띄우던 시절부터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딸들을 낳으면서 경이롭게 생긴 곳은 너희들과 다 가 볼 것이니 무럭무럭 자라만 다오, 를 연발했었고 그것이 곧 나의, 부모의 사명이자 가야 할 길임을 인식해 왔는데 근본은 그 종이배에서 연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종이배와 독서는 나에게 그렇게 큰 포부와 확실함을 안겨 주었다. 비록 충청도 천등산 두메산골에서 초라하게 자라나는 소년이었지만 흘러가는 저 강물 끝에는 푸르른 대양과 이상이 공존하고 나는 그 넓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구사할 꿈을 선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가난도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며, 불우한 환경도 또한 마찬가지처럼 보무도 당당한 소년으로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난 천등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넚은, 망상 같은 포부가 언제나 가득한 소년이었다.


그렇게 무수하게 늦봄마다 띄워낸 종이배에는 미래의 내 열정적인 꿈들이 다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 날의 호기심과 순수함에는 무궁무진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외지에의 동경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인 욕구는 한 소년의 꿈을 세우고도 남았다. 또 종이배를 띄우며 그 종이배가 냇가와 강물을 거쳐 흘러가며 겪을 일들을 상상하는 것 때문에 문학적 감수성을 살려 냈던 것 같다. 종이배를 많이 띄웠던 날 밤에는 종이배가 장마 빗물에 불어난 황톳물에 좌초되는 꿈을 꾸기도 해서 잠에 깬 적도 있었다. 마음속에 띄워 낸 그 수많은 종이배에 실린 꿈들이 이제 더러는 실현이 되어 사랑하는 아내와 열심히 여행하며 살고 있고 흥미로운 레포츠는 도전 정신에 입각해서 많이도 실현을 했다. 호주에서의 번지점프 뉴질랜드에서의 고공점프 (몸무게 과다로 시도도 못함) 호놀룰루 마라톤 완주와 화산섬 말레이시아에서의 환상적인 골프, 정글 탐험등을 이뤘고 이제는 아이들과 거칠 것 없이 나눌 차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아다보면 꿈처럼 내 삶이 순탄하지만 않았다. 그 종이배가 강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 대양에서 자꾸만 태풍과 파도에 시달리는지 내 삶도 때로는 파장이 크게 다가와 고단하기도 여러 번이었고 지쳐서 유년을 되짚다 보면 종이배가 떠올라 왔다. 과거 지향주의자는 아닌 사람임에도 실패의 원인을 유추하다 보면 종이배를 띄우던 그곳에 생각이 정박해 버린다. 결혼을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마치 수전노처럼 돈을 벌어 조금은 싱겁게 느껴지는 아파트도 이르게 마련했을 때 종이배는 파도가 잠자는 은빛대양에 머물러 있었고 가정 전체가 휘청 거리던 저 아이엠에프 시절에는 허리케인이라도 만나 좌초에 가까웠던 모양이었다. 이제 다시 잔잔한 수면 위를 떠다니는 셈이고 이참에 나는 또 하나 종이배의 꿈 실현을 해볼 욕심을 꾼다. 생각도 못한 유년의 꿈 문학과 음악의 성악을 다시금 끄집어내어 시작을 해서 질기게 도전해 가고 있다.


 어린 날에 잃어버렸었지만 다시 찾았고 길도 선명하게 보여서 샘솟는 자신감이 넘쳐 머리에서부터 흐르기도 한다. 좌초되어가는 종이배를 아름다운 대양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니 다양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도 마치 내 노질을 덜어주고 있다. 다른 말로 은혜를 주시는 님들도 많은 것이다. 경이로운 대자연의 위용과 은혜로운 사람들만 내게 남은 것이다. 어차피 나의 열정은 남아돌았고 기도 넘쳤으며 유년을 거울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가 있다. 딸들이 사랑을 찾아 떠나고 나면 나는 사랑하는 아내 무수히도 많이 돌아다닐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를 발끝 닿는데 마다 뿌리며 글로 남기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겠는가. 그리고 함께 걸어야 할 세상이 얼마나 많은가? 늙어 갈 시간도 모자랄 만큼 그렇게 목이 쉬도록 쏘 다니리라. 나중에 생명이 다할 때쯤이면 우주선을 타고 은하계로 나아가 태양계 저기 어디쯤에서 우주선 바깥으로 몸을 영원히 던지는 것이다. 별이 가득한 은하에서 온전한 어린 왕자, 아니 우주의 미아가 되리라.  저 경이로운 은하계를 유영하리라. 그래서 종이배의 한계를 꼭 뛰어넘으리라~~~


그래서 나는 언제나 드림마니아, 이고 어린 왕자이고 영원한 방랑객임을 선언하노라~~~~~


참 바쁘게 사는 속에도 꿈은 많았는데 그 꿈의 발원지는 언제나 책과 유년이었네요. 한 이십여 년 전에 드림마니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쓴 글인데 지금 읽어봐도 가슴이 뜁니다. 이제 소설가도 되었고 수필가도 되었지요. 또 노래하는 아마추어 성악가도 되었고 또 꿈같았던 책들이 멀지 않아 출간됩니다. 세상을 향한 저의 그 깊고도 뚜렷한 열정은 사는 그날까지 이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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