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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주 Nov 12. 2024

다양성의 다양성

(그림책: 「한밤중 도시에서는」)

   활력이자 온기이며 자연의 시력이 되어주었던 해가 저문다. 낮 동안의 분주함이 잦아들면서 어둠의 자락이 서서히 도시의 귀퉁이부터 덮어가기 시작한다. 어둠이 포진하기 전에 좁혀드는 빛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남은 몇 가지 일정을 소소하게 마무리하며 그들의 하루는 셔터를 내린다. 이런 날들이 365번 반복되며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움직여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림책 표제지, 커다란 창문 하나가 보이고 그 너머로 아이가 잠옷을 입고 있다. 창문 사위로는 푸르스름한 어둠이 이미 내려앉아 있고, 어두워지기 전에 켰을 전등이 아이를 노란빛으로 에워싸고 있다. 아이는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아이에게는 이 시간과 침대 앞이라는 장소의 엮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독자의 생각도 그러할 것이다. 


   다음 장을 편 순간,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가족적 배경이 드러나면서 이방인 대하듯 멀리 밀쳐놓았던 그림책 제목이 실상은 아이의 생활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침대 위에서 잠들기 전 고양이와 마지막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오른편으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의 아빠가 기지개를 켜며 등장한다. 아빠의 하루가 이제 시작됨을 암시하는 그림이다. 한밤중 도시의 주인공이 아이의 아빠임이 밝혀지고 그의 직업이 궁금해지는 가운데, 그 다음 장은 아파트 도면처럼 층과 칸으로 화면이 분할되어 펼쳐진다. 




   해는 단 한 번도 저문 적이 없다. 해가 반대편을 밝히고 있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의 밝음을 유지할 묘안을 구상하고, 해에 버금가는 시력을 키워줄 대체 빛을 만들어낸다. 24시간 밞음이 무너지지 않는 도시가 이룩되면서 사람들의 삶에도 셔터를 내리는 시간대의 다양성이 구축되었다. 내 하루의 마무리가 다른 이의 시작점이 되고, 편안한 잠 속에서 꿈을 꿀 때 어떤 이는 발로 뛰며 꿈을 향해 전진한다. 시작과 끝이 접착되어버린 무한 운영 시스템이 도시에 도래한다.


   펼쳐진 그림 속 나누어진 화면들은 각각이 하나의 가구이자 그 구성원들의 거주지이다. 그림책 표지에 등장했던 아파트 전면이 그림책 내부로 들어오면서 건물 실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표지의 색깔이 어둠을 표현하는 파란색이었다면 아파트 내부는 그 어둠에 대응하는 노란색의 빛으로 표현된다. 노란 전등 불빛 아래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은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한밤중 도시의 주인공은 아이의 아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시의 무한 운영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현장 직군에 대해 이 그림책은 말한다. 간호사, 제빵사, 호텔 매니저, 택시 운전사, 소방관, 영화 스태프, 박물관 청소부와 경비원, 119 상황실 담당자.... 이들의 밤 출근과 새벽녘에서 아침까지 이어지는 퇴근에 대해 인물마다 컷 하나씩 정성껏 그려내고 있다. 인공 불빛 아래 작업 현장을 노란색으로 표현하고 컷들 사이에 파란색의 바깥 풍경을 배치하여 지금이 밤 시간대임을 독자가 잊지 않도록 상기시킨다. 우리의 밤이 어둠의 나락으로 꺼져버린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림을 통해 새삼스레 전해진다. 




   그림책의 그림은 실로 많은 말을 독자에게 건넨다. 때론 글이 하지 않은 말을 그림이 전한다. 이때 글 대신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그림이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전달하기에 훨씬 탁월한 표현은 작가가 부러 구구절절 글로 나열하지 않는다. 이 그림책이 그러하다. ‘다양성의 다양성’이라는 표현을 작가는 글로 적어 내려갔을 때 캠페인적 단발성 의미로 곡해될 것을 우려한다. 글은 가끔 진부해지곤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도시의 인구를 구성하고 이들은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포함하며, 성별 구분없이 다양한 직군에서 업무를 담당한다.’     


   아마도 이러한 글이 독자의 읽기를 유도하였을 수 있다. 작가는 글보다는 그림으로 이 내용을 읽어줄 것을 바란다. 아이의 아빠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흑인이다. 무거운 밀가루 푸대를 번쩍 들어 배합기에 쏟아붓는 제빵사는 라틴계 여성이다. 택시 운전사는 중년의 백인 남성이며, 호텔 매니저는 아랍인 여성이다. 젊고 발랄한 소방관과 휠체어에 앉은 안경 쓴 119 상황실 담당자는 모두 여성이다. 청년 영화 스태프와 하얀 백발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청소부, 꽃을 사랑하는 경비원 아저씨까지 이 모든 ‘다양성의 다양성’이 시각적으로 명징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창문으로 보여지는 1인, 반려동물, 부모 자녀 등의 가구 형태도 그 다양성을 보탠다. 




   한밤중 도시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비단 이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한낮의 도시를 가동하는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의 생체리듬을 거스르는 밤의 현장을 열악한 업무라고 치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의 삶에는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그림책이 한밤중 사람들에 주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고 어떤 이에게는 꺼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가, 그렇지 못한가는 개인의 사고 차이다. 결국 도시는 이 모든 사람의 역할이 기둥처럼 떠받쳐져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밤의 노동자를 전면에 부각하고 이들의 삶을 글로 열거하면서도 작가는 그림에 보다 집중하여 글 이면에 담긴 속뜻을 알아챌 것을 요청한다. 화면 분할과 양쪽면 활용의 여러 그림 형태, 섬세한 현장 표현과 역동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막중한 일에 대해 사려깊은 존중의 마음을 전달한다. 




   도시에서의 하루를 또다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독자, 시골에서의 하루도 못지않게 복잡다단하다고 말하고 싶은 독자... 모두에게 이 그림책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권한다. 여기서 도시와 시골이라는 지역적 다양성이 하나 더 추가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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