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
섬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공항이 내가 본 그날의 서울 풍경 전부일 때가 종종 있다. 지상을 밟지 않고도 서울 어디든 목적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으니 일정 후, 남는 기억의 대부분은 지하세계의 풍경들이다. 이 또한 서울의 모습일테니... 하늘 아래 마주한 서울 풍경은 공항뿐이었다고 수정해야겠다. 수많은 사람을 쏟아내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을 태우며 네모 박스 차량은 정차와 발차를 하루 종일 반복한다. 간혹 지상의 풍경을 차창으로 엿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속도의 이미지만 까맣게 보여 주는 차량 내부에서 정차한 곳의 지명을 확인하는 것 정도로 지하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체험한 서울 지하철의 모습이다.
지하철은 복잡한 지상 도로를 벗어나 효율적인 이동 수단이 되어준다. 사람의 발이 가진 도보의 능력을 고도로 확장 시키면서 지하 선로가 이어진 곳이라면 어디든 신속하게 움직인다. 사람들의 승차와 하차가 엇갈리고 지하철 내에 머무르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승차한 사람들은 각자 이동의 목적은 다르지만 지하철이 움직이는 동안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움직임 안에 공존하게 된다. 우리는 승차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 직업을 유추할 수 있다. 하차하는 역명에서 그 사람의 이동 목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각양각색의 승•하차 모습과 승•하차 지역은 그 사람의 삶을 얼추 내비친다. 지금 이 순간도 매일의 연속성 위에, 오늘을 마주한 이들이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전개될 장소의 한 곳으로 지하철에 승차한다.
이 그림책은 앞표지와 뒤표지를 함께 펼쳤을 때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어느 지하철 역사의 모습이다. 스크린도어 뒤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하철이 오게 될 방향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다. 지하철이 도착하면 그림 속의 사람들이 움직여 승차할 것 같다. 그만큼 그림이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스케치한 선을 포기하지 않은 엷은 수채화 채색이 정밀화 느낌이 들게 한다. 가느다랗고 섬세한 수많은 선이 입체감을 부여하면서 그림 안에 표현된 인물과 사물이 현실의 그것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림책은 두 장을 제외하고 전 장면에서 양면 펼침면으로 그림이 표현되었다. 25장의 화폭으로 구성된 그림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표지와 연결되는 앞면지와 뒷면지, 그리고 표지 그림까지 합하면 28장이다.). 그림책에서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서의 그림의 위치를 잘 보여 줄뿐만 아니라 그림에 보다 애착하고 있는 현대그림책의 지점을 확인하는 바라 하겠다. 글 텍스트는 승차한 사람들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를 사물인 지하철의 입을 빌려 내레이션한다. 그림이 사실적인 만큼 글 또한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는데, 서울의 중심을 순환하는 2호선 지하철과 그 역명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마트료시카 구조’의 서사 방식을 취하는 것도 이 그림책의 특이점이다. 크기가 다른 똑같은 모양의 인형이 반복해서 들어가 있는 마트료시카 인형에서 유래하였으며, 전체와 부분이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안에 수도인 서울이 있고, 그 서울의 중심을 순환하는 지하철이 있으며, 그 지하철 안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개별자의 이야기는 지하철의 이야기가 되고, 지하철의 이야기는 서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서울의 이야기는 곧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되며, 이는 지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마트료시카 구조’인 것이다. 반복하여 품음으로써 ‘지구의 이야기’라는 전체와 ‘개별자의 이야기’라는 부분이 한꺼번에 한 곳에 있게 되는 형태가 만들어진다.
지하철에 탄 개별자의 삶이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각 그림에서 전개된다. 그림책 표지의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무리 중, 3명을 포함하여 모두 7명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제일 먼저 회사원 완주씨가 왕년의 달리기 실력을 발휘하며 합정역에서 전력질주로 승차한다. 시청역에서는 복순할머니가 짭짤하고 시원한 냄새를 풍기며 승차한다. 이어 아이를 가슴에 안고 한 손으로는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은 전업주부 유선씨가 성수역에서 승차하고, 반짝반짝 광나는 구두의 재성 아저씨가 구의역에서 승차한다. 학원가가 운집한 강남역에서 나윤이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승차한다. 그러는 사이 상품이 담긴 카트를 밀며 구공철 아저씨가 지하철 칸을 통과한다. 고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청년 도영씨가 신림역에서 승차한다.
승차의 모습으로 인물이 소개되었다면 다음 장에서는 승차와 연결되는 지하철 밖 그들 삶의 여정이 진솔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림책은 신도림역에서 문이 활짝 열리며 승차 대기 중인 사람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한다. 다음 장에서는 영화의 줌아웃 기법처럼 열린 지하철 문에서 멀어지면서 지하철 역사 전체가 드러나 보인다. 승•하차하는 사람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역사 안 어느 한 지점을 통과하며 저마다의 갈 길을 재촉한다. 지하철은 다음과 같이 내레이션한다. ‘나는 이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만납니다.’ 지하철이 만나는 것은 냄새로부터, 수화기 너머 목소리로부터, 땀이 밴 셔츠와 낡은 구두로부터 감지되는 그들 각자 삶의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차창으로 스며들어와 이 모든 것들을 어루만지는 오후의 햇빛과 그림자에도 삶은 녹아 있고 이야기를 낳는다.
지하철은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를 태우고 내린다. 소박하면서 정겹고 열정적이면서 애틋한 삶의 화소들은 지금의 나, 혹은 과거, 또는 희망하는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수에겐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개인에겐 한정된 특별함으로 깊고 진중한 의미를 품는다. 지하철 좌석의 꺼진 자리에서, 기대서서 바래진 기둥에서, 힘있게 디딘 바닥 흔적에서 그 의미는 쉽게 찾아진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한 부분에 지하철이 있어 몸담고 두 발을 쉬는 동안 다시 힘차게 걸어갈 기력을 충전한다. 지하철이 만나는 이야기들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나’이다.
나는 지하철이 없는 도시에 살고 있다. 가끔 오르는 버스에서 지하철과 유사한 만남을 느끼곤 한다. 삶은 교통수단을 가리지 않고 필요에 따라 승차한 그곳에서 여정을 이어간다. 삶은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며 늘 새로운 장을 구성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이라고 설레발을 치든, 새드엔딩일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든 각자의 선택과 행함의 결과일 터이니, 그것 또한 각자의 몫이며 현재의 나는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믿고 나아갈 따름이다. 독자는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