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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주 Sep 11. 2024

배움

(그림책: 「나는 [ ] 배웁니다」)

   배움을 학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부담이고 압박이고 기피 할 무엇인가가 되어 버린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배움의 의미는 ‘쓰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 그 용도로서의 가치가 있으려면 배움을 시작하기 전, 훗날 배운 것의 활용도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배움 직전에 체념을 반복하곤 한다. 실제 어딘가에 쓰일 가치가 있는 것을 배워야 하고, 그 과정이 학습이라면 배움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림 속 주인공은 젓가락질을 배우고, 꽃 기르는 법을 배운다. 새우는 그럭저럭 집을 수 있지만 크기가 작은 밥알은 자꾸만 떨어뜨려 더욱 심기일전하게 된다. 씨앗이 꽃 한 송이로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정원을 가꾸게 될 바람을 가진다. 수영을 시작하며 선생님의 설명대로 따라 하니 마치 물고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물속에서 숨을 잘 쉬는 물고기에 대해 새삼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물고기한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겸허함을 배우게 된다. 


   그림으로 표현된 주인공의 모습은 매우 단순하다. 선명한 색깔의 채색과 굵직굵직한 테두리, 행위 중심의 직관적 인물 표현이 배경 그림 없이도 그 의미가 잘 전달된다. 표지에서 표제지, 첫 장까지 연결되는 노란색 배경의 색감이 독자로 하여금 노랑은 병아리, 귀엽고 작은 것, 어린아이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세상에 호기심을 잔뜩 품고 있는 천진한 아이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주인공에 투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젓가락질이나 꽃 기르기, 수영 등은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배워야 할 것들에 종종 해당한다. 일견 마음이 편해지고 안도가 되는 장면이다. ‘그래, 어린아이들은 세상을 보다 재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이런 배움이 필요하기도 하지’라고 흐뭇해지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전거 타기를 시도한다. 균형을 잃기도 하지만 잘 탈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다짐한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흘러나오는 외국어에 귀를 기울이며 따라 말해본다. 아이가 점점 자라 더 많은 집중과 익힘을 필요로 하는 배움들을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뜨개질을 배워 작은 양말을 완성하고, 발표회를 위한 오케스트라 일원이 되어 심벌즈를 배우는 것까지 주인공의 배움은 소소하면서 진중하다. 단지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나 오락거리가 아니라 진지한 배움의 시간으로 몸이 체득하고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에 감사하며 뿌듯해하는 마음이 그림과 글에서 잔잔히 느껴진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어지는 생일 파티와 축하의 그림, 글... 다음 날 냉장고에 붙어 있는 생일 축하 사진 속 주인공은...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손자가 찍어 준 사진을 꼭 껴안으며 “일흔네 살은 전혀 늙은 게 아니야!”라고 혼잣말을 한다. 


   마지막 장 사진 속 백발 할머니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이제까지 나열된 배움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린아이가 아닌 할머니의 배움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는 젓가락질, 꽃 가꾸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 ‘백발의 할머니가 왜 그런 것들을 배우게 되었을까’라는 생각보다 여전히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을 시도하는 용기에 자신을 반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해보지 않은 것, 익숙하지 않은 것, 낯선 것들 안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걸음이 바로 배움이라고 할머니의 일상이 말해주는 듯하다. 거창한 쓰임 따위 미리 생각하지 않고 어린아이의 천진한 호기심으로 세상과 조우한다면 우리는 방대한 배움 거리들 앞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세상 속 놀이터로 풍덩 뛰어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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