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한계' 보고서를 통해 보는 지속가능성의 의미
지속가능성, 들어는 봤는데...
지속가능성은 제품 포장에서부터 초등학교의 발명대회까지 최근 우리 일상속에서 무척이나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이 뭔지 다시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물쭈물하거나 '친환경' ' 기후위기' 와 같은 한 두 단어를 답할 것 같습니다. 우리곁에 무척이나 가까이 와있지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가깝고도 먼 개념인 것이죠.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UN의 지속가능 발전 목표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또는 이것 조차도 낯선 분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제 알아가면 되니까요.
UN에서는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17개 목표를 제시하였는데요. 우리 정부에서도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링크 참고)
하지만 UN의 17개 목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오랜 논의에 대한 가장 최근의 합의일 뿐, 이것만으로 지속가능성이 무엇인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논의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여러 학자들이 언급하는 지속가능성에 관한 기원과 역사가 완전히 다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부적으로는 시기나 사건들에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의 현대적 개념은 20세기 후반에 등장했고, 주요 회의들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보통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브룬트란트 보고서를 많이 언급하곤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보다 앞선 로마클럽의 보고서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로마클럽은 1968년 과학자, 경제학자, 정치인, 비즈니스 리더들이 모여 글로벌 이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설립한 조직입입니다. 1972년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 (Limits to the Growth)' 라는 첫번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연구의 주제는 사실 환경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구와 경제 성장에 대한 전망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의 결론이 상당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사회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미래에 인류가 맞닥뜨릴 재앙에 대해 데이터를 들어 설명한 것이지요.
세계 인구, 산업화, 공해, 식량 생산, 자원 고갈의 현재 성장 추세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향후 100년 이내에 지구의 성장 한계에 도달할 것입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는 인구와 산업 생산 능력
두 가지 모두의 급격하고 통제할 수 없는 감소입니다.
-<the limits to grow>, p22
수백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는 ‘붕괴’ ‘100년 안에’ ‘통제 불가능한’ 등과 같은 다소 무서운(?) 표현들이 무척 자주 언급됩니다. 그것도 과학적으로 분석한 여러 그래프와 함께 말입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보고서 발표가 마치 인류의 파멸을 예언하는 듯한 절망적인 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무척 논란이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글의 목적은 파멸의 예언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전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장의 한계 프로젝트는 인구, 식량 생산, 산업화, 오염, 재생 불가능한 천연 자원의 소비 등 다섯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연구하면서 대안적 세계를 디자인 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 맥락에서 ‘지속가능한 세계 시스템’ 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계 시스템을 나타내는 모델을 찾고 있습니다:
1. 갑작스럽고 통제할 수 없는 붕괴 없이 지속 가능하고
2.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물질적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모델
'지속가능성' 이라는 단어는 '성장'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고 추구하는 사회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는 학자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장의 한계'는 엄청난 판매를 기록했고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장의 한계'가 출판되고 얼마 후 1974년 세계교회협의회에서는 이 용어를 ‘지속가능한 사회’ 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했고, 생태당(영국 녹색당)을 비롯하여 여러 출판물에서도 이 표현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로 알려진 ' Our Common Future'(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에서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 이라는 표현으로 용어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UN이 제시한 17개의 목표들의 타이틀도 '지속가능발전목표' 입니다.
로마클럽 20년 후, 30년 후
로마클럽 20년 후, 30년 후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학자의 예측보다 현실은 더 암담해졌습니다. 사회가 일하는 방식은 지구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있었고, 예측한 속도보다 빨랐습니다. 개정판에서 메도즈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인류의 현실을 이야기 하면서 모든 세계 사람들을 위한 믿을 수 있고, 충분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을까 두려웠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개정판에서 메도즈는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해 가능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그리고 우리가 이 목표로 달려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0년후, 또 다시 개정판이 출판되었습니다. 그 동안 그가 말했던 경고가 눈 앞의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들이 쏟아졌습니다.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자원 배분과 그로 인한 갈등이 긴급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생태발자국도 늘어났습니다. 재개정판은 이러한 데이터를 업데이트 하면서도 인간사회를 포기하지 않고 같은 기조를 유지합니다. 그는 '지금이라도' 한계를 넘어선 성장의 피해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합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 뒤의 감정들...
로마클럽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메도즈는 슬픔, 외로움, 마지못한 책임감 등의 다양한 감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보고서가 발간된 후에 사람들도 두려움과 공포, 절망 등의 감정을 지나왔겠지요. 사람들은 '성장의 한계'를 재앙의 예언서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석유회사는 이 주장을 반대하는 광고를 후원하고, 주류 경제학자들의 공격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감정들의 시간을 거치고 여전히 이 학자와 동료들은 개정판과 재개정판을 통해 '그럼에도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되돌릴 수 있다' 라고 외쳐온 것입니다. 이 목소리의 무게가 느껴지시나요..?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 뒤에는 이러한 성찰의 시간이 담겨져 있습니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뜨겁게 논쟁하고, 시도하고, 또 희망하는 시간들 말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 시간을 건너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의 맥락을 잘라버리고 정부중심으로 급하게 추진된 숙제같은 느낌이랄까요?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 논의는 개도국과 선진국의 경계에 선 한국사회의 배경과, 정부주도의 ESG 정보공시 의무화 정책의 영향을 함께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지속가능성이 ESG라는 단어와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은 ESG와 동일한 단어가 아닙니다.
메도즈 (Meadows)는 '성장의 한계'라는 표현이 자신의 의도와 달리 너무 단순하게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구절을 읽으며 '지속가능성'도 그와 같은 맥락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도 나도 지속가능성 목표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신의 사업과 연결지어 마케팅하려고 합니다. 또는 얕은 아이디어로 뭔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은 슬퍼하고, 좌절하고, 함께 모여 이야기하며 내일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메도즈는 재개정판의 출판을 앞에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동 저자인 두 학자들은 메도즈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으로 평생을 이 연구에 바쳤다고 말합니다. 재개정판의 마지막 챕터는 재앙의 예언이 아니라 ' 꿈꾸기' '배우기' '사랑하기' 등의 제목들로 구성된 메도즈의 마지막 당부와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재개정판 마지막 챕터에 실린 메도즈의 마지막 당부, '사랑하기'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산업 문화에서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개인주의와 경쟁, 단기목표가 철저하게 발달한 사회에서는
비관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규칙과 목표, 정보의 흐름이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안에서
사랑과 우정, 관용, 이해, 연대를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고 촉구한다.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어려움과 맞설 때 인내하라.
저항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라.
우리 안에서도 일부는 지속불가능한 방식에 매달리려는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여러분 자신과 모든 사람 내면에 있는 최선의 인간 본능을 찾아내고 신뢰하라.
여러분 주변에서 들려 오는 냉소주의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동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