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경제학적 그들의 이야기
중국에서 중국인들을 만나면 거의 백이면 백 (물론 극히 드문 예외는 있겠지만) 나에게 " Are you Chinese?"라고 묻는다. 사실 아시아 국가라고 명명된 나라의 숫자만 자그마치 49개국이나 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늘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한 번은 일본으로 출장으로 갔을 때, 한 일본인이 "Are you korean?"이라고 묻길래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어떻게 내가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 같아 보였 다라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보였냐고 되물었더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고 했다. 사실 묘하게 비슷한 것 같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대만인들은 서로의 묘한 차이를 알기도 한다. 한국인들에게 중국인들을 구분해 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중국인들은 늘 다른 아시아인들 보고 중국사람이냐고 물을까?
처음에 나는 이것이 중화사상(中華思想, Sinocentrism)때문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중화사상은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사상이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자체가 세상의 중심임을 반영한다. 이 사상은 고대 중국에서 발전했으며, 중국은 5천 년의 역사가 있고 자부심이 있고 그래서 중국 문화와 문명이 가장 우수하다고 여기며 주변 국가들을 중국의 문화적 영향권 안에 두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실제로 중국에서 중상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중국은 5천 년 그리고 미국은 200년의 역사이기에 중국이 더 우월하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중화사상의 주요 특징은
세계 중심론: 중국을 "중화" 또는 "중국(中國)"이라 부르며, 문자 그대로 "가운데 있는 나라"라는 의미를 가지며, 이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주변 국가들은 중국 문화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을 내포한다.
천하관: 중국은 천하의 중심으로서 "천자"가 통치하고, 중국 황제가 하늘의 뜻을 받드는 존재로 여겨졌고, 이러한 사상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위계질서를 정당화했다.
문화 우월주의: 중국 문화가 주변 국가들보다 우수하다고 믿으며,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을 "화이"(華夷)로 나누어,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들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다. 예를 들어, 조선, 일본, 베트남 등은 이러한 중화사상에 영향을 받아 일정 부분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회차 강연차 중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한 번은 중국에서 나를 극진히(?) 대접해 준 친구에게 언제 한번 미국에 방문하면 나 역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고 했더니 미국 비자받기가 정말 어렵다고 했다. 그럼 한국이라도 오렴이라고 했더니 한국비자도 받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중국도 국제 위상이 높은데 왜 비자받기가 어려울까? 그냥 쉽게 말해서 모든 14억의 인구가 산술적으로 해외여행을 경험할 수가 없다. 작년의 한국인구의 2200만 명 가까이가 해외여행을 했는데, 이는 인구의 40%가 넘는 수치이다. 같은 기간 중국인들은 1억 3천만 명 정도 (인구의 10% 미만) 해외여행을 했다고 추청하고 있다. 물론 개개인의 경제력차이 일인당 국민소득이 2023년 기준 중국은 12600불 한국은 35570불로 차이가 나기에, 해외여행 인구수가 적은 것도 당연한 듯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중산층의 규모는 무려 4억 명으로 무려 중산층 규모만 미국의 전체 인구수보다 더 많다. 얼추 계산해서 중산층 정도면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재력은 있는데, 중국인의 해외여행 숫자는 2023년 1억 3천만 명으로 중산층 인구 4억 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즉, 재력보다는 비자를 지원하고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쿼터제의 영향으로 인구의 상당수는 해외여행이 쉽지 않다. 실례로 비자를 받으려면 시속 300킬로의 고속기차나 비행기로 몇 시간을 달려 주요 도시로 이동해야 하며, 숙소를 예약하고 숙박을 하며 비자 인터뷰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 인터뷰 기회 마쳐도 몇 개월에서 몇 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산술적으로 인구의 70-80%는 평생 해외여행이 어렵고, 그로 인해 만나는 아시아인들은 죄다 중국인들 뿐인 것이다.
여하튼 중화사상의 이유여서든, 해외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여든 내가 영어로 인사를 해도 중국말로 중국사람이냐고 묻는 말은 나로 하여금 묘한 웃음을 짓게 한다.
지난여름 독일에 강연차 갔다가 주말을 이용해 벨기에를 방문했다. 벨기에에서 유명하다는 프랑스 해산물 식당을 방문했다. "Good morning"이라고 인사를 하자, 프랑스인 주인이 시크하게 째려보면서 "봉주르"라고 답했다.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적 배려는 최소한 인사는 그 나라 말로 하자였는데, 영어 인사가 달갑지 않은 프랑스인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했던 것이다. 나도 미국시민권자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세계 여행을 할 때,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이해해야만 해라는 심보로 (아니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패권을 잡은 세월이 100여 년이 다되어 가기 때문에) 무작정 영어로만 그것도 빠르게 말한다. 자기네들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든, 무엇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든 상대방에게 영어를 종용하듯 영어로만 이야기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번쯤 상상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이 온다면. 그러면 우리는 영어 대신 중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영어의 언어학적 근간을 공유하는 독일어, 네덜란드어, 스칸디나비아어, 그리고 프랑스어 등 을 사용하는 나라들은 미국이 그렇게 구미가 당기는 녀석들이 아니더라도 미국과 힘을 모아 새로운 신흥세력 중국을 몰아내야 하는 강한 동기를 가지는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마무시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G2국가로 자리매김한 중국이 넘어야 할 산은 전 세계 Fortune 500 대 기업의 속하는 기업 중 400여 개가 미국 기업 (한국기업은 16개)이라는 기염을 토하는 어마무시한 경제력만이 아니다. 또한 중국이 극복해야 할 산은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의 40%에 달하는 외계인을 상대해 지구를 지킨다는 미국의 군사력만이 아니다. 영어로 하나 된 현재의 인류는 중국이 패권국에 도전할 때 넘어야 할 하나의 산이다. 아니 산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