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polar world: 중국의 유니온 페이
지난여름 독일출장중 가장 불편한 점은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가게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손님이 카드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카드사 수수료와 카드 사용 금액이 매출로 잡히면서 세금 회피가 어려워지는 등 추가 비용을 주인이 감당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었지만,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의 소상공인들은 여전히 현금을 유도하고, 구매 한도를 두고 있었다. 나도 한국에서 외국인으로서 5000원을 송금하기 어려워 종로와 명동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비자, 마스터, 아멕스 중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카드들은 어느 나라의 회사일까? 물론 여러 나라가 합작하여 만든 회사(비자)도 있지만, 결국 본사는 모두 미국에 있다. 페트로 달러로 전 세계를 달러라는 화폐로 묶어버린 미국은 이러한 전자 결제 시스템을 독점하게 되었다. 심지어 아멕스는 다우존스 지수에 포함될 정도로 미국에서도 거대한 회사이다.
이처럼 기울어진 경제 운동장(금융결제시장)을 조금 평평하게 만든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2000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글로벌 강국이 되기 위해 먼저 미국을 자극하며 도입한 것이 전자결제 시스템인 유니온페이다. 당시 9·11 테러와 닷컴 버블로 침체된 미국이 유니온페이가 지금 2024년처럼 성장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 유니온페이는 전 세계에서 세 명 중 한 명이 사용하는 거대한 전자결제 시스템으로 성장했다. 2002년에 도입된 유니온페이는 중국보다 해외에서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물론 중국 내에서는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를 통한 결제가 더 일반적이다. 한편, 유니온페이는 다른 카드사보다 저렴한 0.8%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는 전략적 요소이며,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가 자본주의와 값싼 노동력 덕분에 이러한 수수료 인하는 쉽게 감수할 수 있다. 전자결제 시스템뿐만 아니라, 한국이 중동에서 기름을 사 올 때 달러를 사용해야 하는 시스템도 불공정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따랐다고 치자. 달러 패권을 기반으로 세워진 전자결제 시스템 덕분에, 모든 금융 결제마다 미국 회사에 수수료를 바치는 형태가 된 지금,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 구조를 유지해야 하는가? 길에서 카드로 흔한 붕어빵 하나를 사 먹어도, 아주 적은 금액이 미국으로 흘러간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수수료 명목으로 외국 카드사에서 매년 한국시장을 통해 거두어 가는 금액이 자그마치 수백수천억 원이다.
세계 경제에 대한 중국의 기여는 결코 작지 않다. 특별히 저렴한 수수료 신용카드를 등장시킨 중국은 참으로 대단했다. 이처럼 미국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느 정도 평평하게 만든 그 공로는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만약 중국이 패권을 잡았을 때도 유니온페이가 여전히 0.8%의 수수료를 부과할 것인가? 대답은 비관적이다.
지난여름 독일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독일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독일이 1-2년 내로 중국과 무비자 협정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국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무비자 협정을 유럽은 중국과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적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더욱 단단하게 결속된 유럽연합이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완충지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물론 독일도 이민자 문제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겠지만) 혼돈의 춘추전국시대가 아니라, 다극화 세계(미국, 중국, 그리고 유럽연합)인 글로벌 4.0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제 미국 대선 토론에서 후보자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연히 중국 이민자들을 겨냥한 말이다. 다극화 세계, 글로벌 4.0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가 개고기를 먹더라도 (나는 결코 먹지 않지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너무 달라서 상대가 귀가 한 개라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이 세 개라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보는 외계인 같은 상대라도, 그 누구든 끌어안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한 포용력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를 어느 패권국도 좌지우지하지 못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다극화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