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SM 12th Story
여러분,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올 때까지 어떤 제품들을 사용하셨는지 한 가지만 떠올려볼까요?
저의 경우, 화장실 슬리퍼가 떠오릅니다. 연노랑 컬러의 깔끔한 디자인이 인테리어와 잘 어울려서 구매하게 되었죠. 여러 슬리퍼를 거치면서 가장 오래 사용하고 있는 슬리퍼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디자인이 예뻐서 구매했지만, 사용하다 보니 평소 불편한 것을 해결해 주더군요. 평소 화장실 문을 열고 닫을 때 슬리퍼 머리가 문에 걸리는 것이 불편했는데, 이 슬리퍼는 발등 높이를 약간 낮춰 문에 걸리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바꿀 생각이 들지 않고 만족하며 쓰게 되었죠.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바로 오래 사용하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낡고 불편한 물건을 오래 사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제품은 예쁘지만 내구성이 좋지 않아 사용주기가 짧은 것들도 있고, 예쁘면서도 탁월한 기능으로 오래 사랑받는 제품도 있죠. 무엇이 이 둘의 차이를 만들까요? 바로 만드는 이의 의도와 가치관, 안목에 있습니다.
AMSM 열두 번째 이야기는 오래 쓰이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디자인 윤리 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밤새 덮고 있던 포근한 이불을 걷고 일어나, 냉장고로 가서 컵에 물을 담습니다.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신 후 곧바로 화장실로 가죠. 그립감이 좋은 미세모 칫솔로 양치를 하고, 언젠가 어떤 이유에서 구매했던 옷가지들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죠.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은 누군가가 디자인한 물건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만드는 이의 가치관과 안목은 고스란히 제품에 녹아,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삶에 작든 크든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좋은 디자인은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생명력이 길죠. 그렇다면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흔히들 디자인은 산업의 꽃 이자, 경쟁력의 핵심으로 불리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합니다. 디자인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디자인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조형요소 가운데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들의 구성으로, 합리적이며 유기적인 통일을 얻기 위한 창조적 작업과 그에 따른 결과.’
따라서 디자이너란 주어진 목적 달성을 위한 의도적 선택의 합을 전달하는 ‘전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의도가 소비자에게 잘 전달이 되면 성공한 디자인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시각적 결과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디자이너가 단순히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매력적인 디자인만을 의도한다면, 기업 매출 상승에만 목적을 두고 디자인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Victor J. Papanek, The Minimal Design Team, Big Character Poster No. 1 Work Chart for Designers (1973, 1969년 초안)의 일부.
무언가를 만드는 업에서는 반드시 ‘윤리’ 문제가 뒤따릅니다. 오늘날 윤리의식 없이 단순히 보기에만 예쁜 제품, 더 많은 상품의 판매, 더 많은 생산과 소비 창출이라는 이익 측면에서만 제품을 만든 대가로 지구 곳곳에 더 많은 쓰레기를 쏟아붓고, 극심해지는 환경오염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우리에게 익숙한 ‘윤리적 디자인’ 개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40~1950년대 상업주의와 소비주의가 팽배했던 시기 활동했던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이론가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이 1970년에 쓴 책 ‘인간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으로부터 시작되었죠.
이 시기의 디자인은 물건을 구입하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소비패턴을 짧게 만드는데 기여하였고, 이러한 흐름은 사회경제 및 환경 전문가들의 많은 비판을 낳았습니다. 빅터 파파넥은 디자인의 본질과 원리 등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디자이너가 좀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하는 데 기여하거나, 혹은 반대로 지구환경파괴에 일조할 것이라 확신하였으며, 불필요한 욕망과 소비를 부추기는 기술이 아닌, 인간을 위한 윤리적 행위로써의 디자인을 주장하였습니다.
▲빅터 파파넥 / <인간을 위한 디자인> 디자인 윤리와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쓴 기념비적 저술
그는 ‘디자이너는 항상 자신이 만든 제품이 파생시킬 결과를 염두에 두고, 제품의 재료와 제작방법은 물론 사후의 폐기 문제나 재활용 가능성 등 모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디자이너는 상품의 재료 선택·제조·유통과 포장·폐기 전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며, 사회적·생태적 문제 해결에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인 것이었죠. 따라서 디자이너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은 디자인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살펴보실까요?
키보드와 라이터, 구부러지는 빨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 아셨나요? 모두 약자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19세기 발명가 펠레그리노 투리는 시력을 잃어가는 연인과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 키보드의 원형인 '타이프라이터'를 고안했습니다. 라이터는 두 손을 못 쓰는 사람을 위해, 구부러지는 빨대는 누워서 생활하는 환자를 위해 개발되었죠.
일본의 유능한 카피라이터이자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인 사와다 도모히로는 아들의 장애가 전환점이 되어 약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패션기업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와 함께 장애인 패션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스커트를 입고 싶은데 착용이 불편하고 휠체어 바퀴에 낄 우려 때문에 좀체 시도하지 못하는 여성을 위한 옷이죠. 반년의 디자인 끝에 지퍼를 활용해 타이트스커트도 되고 플레어스커트도 되는 옷을 고안해 냅니다. 타이트스커트로 입으면 바퀴에 낄 염려가 없고 약속장소에 도착하면 지퍼를 풀어 아름다운 스커트로 연출할 수 있습니다.
요리를 예로 들자면 지속가능한 원단은 친환경 식재료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하고 맛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책임감 있게 생산된 식재료를 사용해야 하듯,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옷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정성스레 재료를 준비하는 일이 바로 섬유업계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새로운 제품을 시기적절하게 내놓기 위해 앞다투어 경쟁하는 시장에서, 공들여 기획하고 원단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시간을 들인다는 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의도와 방향성을 갖고 제품을 기획하고 만든다면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관은 제품에 녹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디자이너에게 닿을 것이며, 오래도록 사랑받는 옷이 되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릴지도 모릅니다. 빅터 파파넥의 신념처럼 모든 만드는 이가 인과관계에 대한 올바른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연대하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가속되는 환경오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지 않을까요?
더욱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원단
환경 친화적이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원단 중 두 가지를 꼽아봤습니다. 면 원단 중 ‘O/E사(Open End) 사의 줄임말)’라는 실종류가 있습니다. 목화솜에서 실을 만드는 과정 중 단섬유와 장섬유를 나누는 여러 공정을 거칩니다. 이때 두 번의 빗질 공정에서 단 섬유(슬라이버)로 만든 실을 O/E사 라고 합니다.
“오가닉서클 10”은 100% 오가닉 O/E사를 사용한 원단입니다. O/E사를 사용해 원단을 만들면 꼬임수가 낮아 마모강도가 조금 더 강해지므로 잦은 세탁과 착용을 견뎌내는 능력이 우수해, 관리도 쉽고 오래 입을 수 있습니다. OE사는 단섬유들로 제작하기 때문에 거칠고 잔털이 생긴다는 특징이 있는데, Mellow Silket이라는 에이엠컴퍼니 독자적 실켓 가공법으로 쾌적하고 부드러운 촉감으로 보완했습니다. 기능적인 것 외에 심미적으로도 아주 매력적인 원단입니다. 실 특성상 벌키하고 가벼워 빈티지한 레트로 감성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오가닉 서클 10”을 경험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24 F/W NEW ITEM “아우라”입니다.
아우라는 100% 리사이클 나일론으로 제작하여 지속가능 하면서도 탄탄하고 질긴 원단입니다.
RIP STOP은 해석 그대로 ‘찢는 것을 멈추다’는 뜻입니다. 원단의 이름대로 잘 찢기지 않는 질긴 특성을 갖고 있죠. 립스탑 원단은 굵은 실을 바둑판 모양으로 일정하게 배치하여 건축물로 이야기하자면 콘크리트 안에 철근을 넣어 보강하듯 찢어짐을 최소화하는 방식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용으로 개발된 조직으로 텐트, 침낭, 낙하산, 열기구 등 아웃도어에 최적화된 소재입니다.
또한 나일론의 신축성을 잡아내는 특수한 기술력을 적용한 에이엠컴퍼니만의 독자 개발 시그니처 아이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짝 비치는 가벼운 중량감의 소재이지만 너무 쨍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사이 그 어딘가의 컬러감을 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컬러감과 가벼운 착용감, 탄탄한 내구성을 가진 지속가능한 원단이라면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입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에이엠컴퍼니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경영 철학인 윤리적 디자인 방식과 다양한 사례들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공감이 되셨을지 궁금합니다. 전 세계의 10%가 우리의 원단을 경험하고 같은 가치관을 나눌 때까지, AMSM는 계속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AMSM은 에이엠컴퍼니가 발행하는 월간 매거진입니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 자연과 함께 디자인하는 에이엠컴퍼니의 24년 8월 12th story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컬러의 역사에 대한 주제로 에이엠이 컬러를 기획하는 방법을 풀어볼까 합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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