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가리키는 지칭은 있는데 남자를 가리키는 지칭이 없는 경우도 있긴 있다. 그건 여성을 배려해줘서가 아니라 독점 욕심과 갑질 근성에다 좋은 건 내 거 안 좋은 건 네 거라는 발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일반지칭 앞에 '여'를 붙여서 구분하는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사전의 뜻으로는 소년(少年)은 남자아이, 소녀(少女)는 여자아이를 말한다. 소년(少年)이라는 한자에서 ‘남자’라는 성별을 찾아볼 수 없는데, 어떻게 ‘남자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녀(少女)가 있으면 소남(少男)도 있게 마련이지만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 덕분에 한국에도 알려진 William S. Clark의 “Boys, be ambitious!”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로 번역되어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말이다. 이 말은 그가 1876년 일본 정부의 고용으로 일본에 농업대학을 설립하고 8개월 간 근무하다 일본을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남긴 말이다. 이때 당시 일본 여학생들이 그 농업 대학에 다녔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여학생들도 다니고 있었으면 굳이 'boys'만 특정해서 이 얘기를 했을까? 'Boys and girls'라고 했겠지. 일본에서도 이걸 두고 여기서 boys는 남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고 변명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건 동문서답이다. 왜 boys가 대표성을 갖느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boys and girls였다면 저렇게 변명할 일조차 없었다.
저 영어 문장은 일본이 알아서 할 일이고, 중요한 건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이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왜 '소녀'는 안 쳐줬냐고 발끈하는 분도 책에서 봤는데, 나는 이 번역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번역하신 분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오역은 이렇게 하는 거다! 영어문장에만 동조해서 발끈할 일이 아니라 남자들에게 ‘소남(少男)’이라는 말을 찾아주면 된다. 소년(少年)이 소남(少男) + 소녀(少女)라는 사실을 주목하면 된다.
영어에서는 ‘Boys and girls, be ambitious!’라고 해야 성차별이 안 되겠지만,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 문장은 결과적으로는 잘 번역된 문장이다. 영어 사전에 ‘boy'를 ’소년‘이라고 풀이해놓은 건 엉터리다. ‘소남’이라고 뜻을 달아놓아야 맞다. 국어사전에서 '소년'이 '사내아이'라고 우길 게 아니라 '소남'이라는 말을 등장시켜야 한다. 외국어를 잘하려면 내 나라말 실력이 뒷받침 돼야한다는데 영어를 버벅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전에서 ‘청소년’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있지만 ‘청소녀’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고, ‘청년’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있어도 ‘청녀’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소년=boy, 소년↔소녀’라는 개념은 이제 보내줘야 한다. '소년 = 소남 + 소녀'라는 개념을 두고 눈 가리고 아웅하면 안 된다. 다만, 세뇌된 세월 때문인지 소년이라고 하면 마치 사내아이만을 가리키는 것처럼 들리긴 한다. 여자아이들만 있을 때는 청소년, 청년, 소년이라고는 하지 않으니까.
여자에게 ‘그녀’라고는 해도, 남자에게 ‘그남’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한국말에는 원래 ‘그녀’라는 말이 없었는데, 영어의 ‘she'에 해당하는 한국말이 없음을 아쉬워한 김동인이 1920년 무렵에 일본에 유학하던 중 일본말 ‘피녀(かのじょ, 彼女)’에서 따왔다고 한다(한겨레 신문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참고. 나중에 이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영어의 she는 he에서 탄생했다고 하지만, 어원을 무시하고 철자만 놓고 보면 오히려 she에서 he가 탄생했을 것 같은 모양이다. 영어, 일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국말은 할 수 있다. 한국말로는 ‘그남자’, ‘그여자’라고 하면 되니까 굳이 일본어에서 남자에 종속된 존재로 표현하는 ‘그녀’라는 표현을 빌려다 쓸 이유가 없다. ‘그녀는’은 발음상으로도 좋지 않다.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선생님이 she로 시작하는 문장을 ‘그녀는’이라고 하니까 남자애들이 책상까지 두드리면서 웃고 따라하느라 난리가 났었다.
'그녀'에 대응하는 말은 '그남'이지 '그'가 아니다. she는 he에 s 철자가 하나 추가됐지만, '그녀'는 아예 글자 하나가 추가되었다 보니 같은 발상으로 '그남'도 성립한다. 한국말에서는 그남자, 그여자, 그할아버지, 그할머니, 그아줌마, 그아저씨처럼 ‘그’만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굳이 영어나 일본어를 따라갈 이유가 없다. '그녀'를 보내버리든가, '그남'을 탄생시키든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니까 여자에게도 그냥 ‘그’라고 하면 된다.
이런 말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부녀자를 다음 사전에서 찾아보니 '부인과 여자라는 뜻으로, 성숙한 여자와 결혼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결혼한 여자와 성숙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1. ‘며느리 부(婦)’다. 말이 좋아 ‘부인’이지 결국 ‘며느리’라는 얘기다. 그럼, ‘며느리와 여자’가 된다. 며느리는 여자가 아니고 남자였나? 사전대로 ‘부인과 여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며느리와 여자! 부인과 여자! 며느리와 부인도 여자인데 왜 따로 호출되었을까?
2. 성숙한 여자와 결혼한 여자? 눈 가리고 아웅, 꿈보다 해몽이다. 대충 두드려 넣어서 풀이해 놓은 사전 설명이 가관이다. 어디에도 '성숙한'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데 그저 이쁘게만 포장하려고 한다. '결혼한'이라는 말도 없다. 며느리라는 뜻은 버리고 결혼한 여자란다. 관건은 부인(婦人), 그러니까 며느리도 여자인데 굳이 따로 분리되어 '부녀자 즉, 며느리와 여자'라고 했던 사정이 뭐냐이다. 성숙한 여자든 결혼한 여자든 그냥 '여자'라고 하면 되는데 왜 굳이 그래야했냐다.
부녀자가 있으면 부남자(夫男子)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다음 사전, 네이버 사전에 둘 다 없다고 나온다. 부남자(夫男子)는 왜 주목받지 못했을까?
남자의 눈높이에서 보면 여자나 아이나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여자를 아이와 같은 수준으로 놓고 묶어버리는 발상에 할 말을 잃었다. ‘아남자(兒男子)’는 어디에?
여인은 있어도 남인은 없다. 중년 여성, 중년 남성은 있는데 중년 여인은 있어도 중년 남인은 없다.
윤락 여성 / 윤락 남성(?)
윤락(淪落)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1.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가 됨
[다음]
2.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짐.
[네이버]
단어 자체에 '여성'이라는 말이 없는데 왜 '여자가'로 시작할까? 여자든 남자든 혼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데, 왜 여성만을 얘기할까? '파는'이라는 말도 없다. 사고 파는 건 '매매'다. 그래서, 성매매라는 말이 따로 있다.
사전에서 '윤락 여성'과 '윤락 남성'을 찾아봤다. '윤락 여성'은 나오는데 '윤락 남성'은 두 사전에 다 올라있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윤락녀'와 '윤락남'도 찾아봤지만 사정은 같다. 이쯤되면 ‘그 많던 윤락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 책 정도는 나와줘야 한다. '윤락'은 여성의 일이라는 발상! 백번 양보해서 윤락이 '돈 받고 성행위를 하는'이라고 치자. 그럼, '돈을 지불하고 성행위를 하는'에 해당하는 말은 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일상은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인데 정치가들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건 왜 그렇게 눈 뜨고 못 봐줘서 난리일까? 대한민국 남자들의 뇌는 한쪽이 고장난 게 틀림없다.
매춘부(賣春婦), 왜 女가 아니고 婦일까? 매춘을 하는 여자는 다 뉘댁 며느리들이란 말인가!
몸을 파는 매춘부(賣春婦)가 있으면 몸을 사는 매춘부(賣春夫)도 있게 마련인데 사전에는 매춘부(賣春婦)만 올라와 있다. 파는 사람만 문제라는 대한민국 남자들 머리로는 매춘부(賣春夫)는 용납을 못하시겠단다. 파는 사람이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만, 매춘과 윤락은 여성의 영역이라는 체면에 걸린 대한민국에서는 賣春婦는 있어도 賣春夫는 없고, 윤락 여성은 있어도 윤락 남성은 없다.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부정할 거면 생물학적 욕구 어쩌고 소리나 말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