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물여덟 번째 여름을 지나면서 더위를 먹었는지 내가 좀 이상해졌다. 수년간 공시생(공무원 준비생)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독서실에 출근도장을 찍던 내가 드디어 오늘 아침에 독서실에 가지 않았다. 내 인생 첫 일탈을 즐기기 위해 천장을 보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으면서 이렇게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구나?’ 신기했다. 해방된 느낌, 숨 쉬는 게 가벼워졌다. 나는 침대 위에 있는데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았다.
학창 시절부터 진행되어 온 부모님의 장기 프로젝트였던 ‘첫째 딸 9급공무원 만들기’는 어젯밤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아직 프로젝트 주최자들은 모르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으시다면 알게 되셨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착한 딸’ 가면을 쓰고 4년의 시간을 공시생으로 살아왔다. 사실 나는 평생을 공부를 좋아하고 내가 잘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수험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다. 수험생이란 직업은 내 천직이었다. 더군다나 수험생이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운동도 해야 한다니 금상첨화 아닌가? 그래서 나는 하루에 8시간 공부하고 2시간 운동하는 행복한 수험생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날 아침 독서실을 안 갔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나는 사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평생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날 속이고 살았다. 주변에서 ‘넌 공부를 좋아해, 잘하고 있어, 널 믿어’라고 날 세뇌시켜서 28년 동안 그런 줄 알고 살아왔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누군가 내게 뭘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항상 ‘공부’라고 답해왔다.
그리고 나는 공무원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공무원을 하는 건 당연했고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본투비 공무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거니까 이걸 거스를 힘조차는 내게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공무원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부정했다. 지금 슬럼프가 와서 잠깐 방황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자꾸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말 나의 주관이 하나도 없다. 엄마가 좋아하는 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었고, 아빠가 싫어하는 게 내가 싫어하는 것이 되어있었다. 곧 서른을 앞뒀는데 내 주관도, 자율성도 하나 없었다. 나는 평생 모르고 살았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부터 공시생 영업 종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