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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솔 Bin Sole Sep 23. 2024

라캉에게 주체란?

주체

                    


주체


라캉은 자아를 상상적인 것이라고 본다. 자아는 자기를 반영하는 이미지에 대한 동일화의 퇴적물로 이루어졌으며, 마치 양파 껍질처럼 다층화되어 있다. 그것을 하나씩 벗겨나가면 나중에는 아무런 실체도 남지 않을 것이다. 라캉은 자아를 하나의 구멍이라고 말한다.주체는 자기 존재의 결여를 대타자의 결여로 인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대타자의 욕망으로 자기 욕망을 경험한다. 이것이 라캉의 유명한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는 명제의 의미 중의 하나이다.언어의 세계에 들어갈 때 인간에게는 구조적으로 하나의 시니피앙이 결여된다. 주체란 이러한 결여이다. 주체는 자기 존재를 나타내는 시니피앙을 갖고 있지 않으며, 자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주체는 상실된 존재로 태어난다. 상실된 존재라고는 하지만 최초로 맛본 충족된 세계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주체란 존재의 결여로 태어나는 동시에 그와 같은 신화적 충족의 세계가 소급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타자(A)의 결여(S(/A))에 의해 스스로의 거세라고 볼 수 있는 상상적 거세(-φ)를 초래하며, 그 결과로 태어난 빗금 쳐진 주체($)가 존재의 결여이다. 두 주체를 환상의 주체($a)와 충동의 주체($D)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환상적 존재를 갖고 있으며 자기의 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후자는 이름이 없고 머리도 없는acephale 주체이다. 이것들을 따로따로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오히려 주체란 언제나 이와 같이 두 차원으로 분열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주체란 결코 현재형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언제나 예견과 소급 사이, 과거와 미래의 불확정성 사이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주체는 자아이상의 지점에서 자기를 바라보게 되고 그러한 이상에 들어맞는 자기의 전체상을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이 자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성된 자아는 주체에게 자율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시니피앙의 효과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주체도 자아를 통해 자기가 세계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자아는 편집증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아는 언제나 '너인가, 나인가'라고 하면서 거울 이미지와 경합 관계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자아에 의해 허위의 존재를 부여받은 주체는 자기를 의식적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아를 구성하는 자아이상의 단일한 표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단일한 표식은 주체가 그곳에서 자아를 보는 지점이며, 자아에 대해 외부적 관계 즉 초월적 관계에 있다. 초월적 에고란 이 지점을 가리킨다.


주체라고 부르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에서 제거되어 절단면에 나타나는 뒤틀림이다. 



푸코 입장에서 주체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주체는 한편으로는 보편적 개인의 이데올로기에 예속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연루된 자기이데올로기에 예속되어 있다. 그래서 주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탐색 기술, 의식, 고백' 등과 같은 무수한 자기배려 기제에 예속되게 된다.






최초의 시니피앙 아래 시니피에의 효과로 오는 것이 주체이다. 그러면 두 번째 시니피앙 아래에는 무엇이 올까? 바로 대상 a 문제이다.


'라캉 대 라캉', 무까이 마사아끼 지음/임창석 이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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