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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06. 2024

작별-짝사랑의 시작-연애-또 다시 작별

원하지 않아도 교사들은 해마다 작별을 경험한다. 수료식과 졸업식. 영유아 교사(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는 인생에서 가장 귀여운 시기의 아이들과 생활하기에 그 작별이 더 어렵게 다가온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며 일 년 동안 엄마의 마음으로 키웠으니 헤어질 때의 마음은 무엇을 생각하든 상상 이상이다. 다음 학년도 입학식을 준비하면서도 그 여운이 남아 ‘새롭게 맞이한 아이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작별의 슬픔을 느끼는 것도 잠시,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  입학식 전 개인 서류를 통해 얼굴과 이름을 익히고(가끔 사진 속 얼굴과 실제 모습이 달라 버퍼링이 걸리긴 하지만) 성향과 특징 등을 세세하게 파악하며 혼자 하는 사랑이 시작된다.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나는 처음부터 너를 알고 있었고, 이미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약간의 과장을 가미하며 그 시동을 건다. 


그런데 짝사랑 모드는 아이들에게 금방 전염이 된다. 며칠 후부터 아이들은 ‘선생님이 엄마보다 좋아요, 선생님 사랑해요’를 연발한다. 정말이냐고 진심이냐고 엄마가 좋지 어떻게 선생님이 좋냐고 연거푸 물어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진짜라고, 선생님이 제일 예쁘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같이 사랑하는 연애 단계로 돌입한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도화지 한가득 선생님의 얼굴을 그려 수줍게 웃으며 건네고, 고사리 손으로 접은 종이꽃도 내민다. 그리고 볼에 뽀뽀도 언제든 해준다. 가끔 백 번 해달라고 하면 진심을 다해 교사의 얼굴을 침범벅으로 만들며 백 번을 채운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들하고 있으면 언제나 제일 예쁜 사람이 되고 누구보다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할 때도 온종일 들었던 아이들의 종알거림이 들린다. 깔깔대는 웃음소리, 삐쳐있는 뾰로통한 표정, 오물오물 음식을 씹고 있는 솜털 가득한 볼까지. 내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하다. 내일은 무얼 하고 놀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디로 나들이를 갈까?를 고민한다. 잘 자고 왔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기분은 어떤지 물어보며 꼬옥 안아주고 싶어 아침이 기다려진다.  아이들에게만 나는 뽀송뽀송한 냄새를 맡으며 시작되는 하루. 그렇게 연애에 푹 빠져있는 사람처럼 산다.


해마다 2월, 작별의 순간이 오면 어떻게 일 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갔는지 시간의 속도가 야속하다. ‘더 잘해줄걸, 한 번 더 안아줄 걸, 그때 그 말도 꼭 해줄걸....’ 남는 건 아쉬움과 미안함이다. 나도 울지만 아이들도 소리 내며, 몇몇은 소리를 꾹꾹 누르며 운다.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짝사랑으로 시작하지만 다행히 연애를 하게 되고, 이제 좀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나 싶더니 헤어지란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기 마련이라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아이들과의 작별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연애한 시간 동안은 원 없이 행복했으니,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니 그 기억으로 마음을 추스른다. 너무 오래 슬퍼하고 있을 순 없다.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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