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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Oct 01. 2024

엄마의 수술실 앞에서..

엄마가 유방암으로 아플 때, 엄마가 수술방으로 들어가고 대기실에서 나오는 수술 현황판에 '수술 중'이라는 문구가 뜰 때, 나는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없던 볼펜을 찾아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문장을 다시 외고, 책에다 써가며 열심히.. 그렇게 열심히 '읽는 척'을 했다. 


수술은 별 탈 없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지만 사실 조금이라도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혹시나 다른 곳에서 암이 발견되지는 않을까, 엄마가 깨어나지 않는 건 아닌지, 심각한 표정의 의사 선생님 표정을 한번 더 눈치로 읽어야 하는 건 아닌지 등의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저 불안한 생각을 밀어내고 떨쳐내기 위해 그저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수술은 두 시간 반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시간은 조금씩 그리고 또 무심히 흘러가는 듯했다. 대기실과 수술실 사이에는 멀어도 이삼, 혹은 삼사미터 남짓 떨어져 있을 공간일 뿐인데.. 엄마는 눈을 감고 수술대에 누워있으며 의사는 수술을 하고, 아들은 책을 읽고, 누군가는 대기실 티비를 보면서 잡담을 하고 시끄럽게 전화로 수다를 떤다. 


'공간', '물리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범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그래! 우리는 모두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달랐다. 같은 공간이라는 곳에서 여러 사람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이 어쩜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수술실과 대기실은 같은 공간에 단순히 줄 긋기로 만들어진 '공간' 일 뿐인데 누군가는 넘치는 긴장으로 누워 삶을 다시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 사실을 잊기 위해 노력을 하고, 누군가는 그저 일상을 산다. 


잠시 뒤, 대기실 쪽문이 열리고 엄마의 이름을 호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수술이 끝나면 현황판에 '수술종료'라고 뜨고,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다음 누군가가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줄 알았건만.. 나에게 병원은 이리 낯설고 조금은 퉁명스럽고 또 무심하다. 


"무슨 A.I. 가 이야기하는 줄 알았어요."


내가 엄마한테 투덜거리며 한 이야기다. 수술 전날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다리를 꼬고 컴퓨터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엄마의 '유방'에 대해, '암'에 대해, '수술'에 대해 녹음기가 말을 하듯, 외워둔 대사를 읊듯, 피곤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감정 없이 다른 질문이나 의문사항에 대해서는 단 일미리의 오차도 없이 무 자르듯 잘라버리던 그녀. 나와 그녀는 같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도통 해석이 어려운 영어들과 그저 흩뿌려진 모래인 초음파 사진들이 내 눈에 해석이 될 턱이 없었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수술방에서 나오는 엄마, 침대에서 밀려오듯 다가오는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리없이 눈에 눈물만 그렁대는 엄마. 젊은 시절 누구보다 강하고 힘있게 그렇게 아들 둘 키운 엄마가.. 힘들다고 말 한마디 없던 그녀가 '아프다.'라고 이야기할 때 나 역시 눈물이 났다. 


'엄마 괜찮아?', '어디가 아파?' 


라며 충분히 물어봄직 했었지만 나는 엄마에게 어디가 아픈지 물을 수가 없었다. 방금 수술한 유방의 상처가 쓰린 것인지, 가슴이 아픈 것인지, 혹은 그저 이제는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싫은 것인지.. 그저 엄마는 아프다고만 한마디 하고 눈을 감았다. 엄마의 수술실 앞에서.. 그렇게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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