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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에 위로를

by 쿠키

요즘은 유독 부고장을 많이 받는다. 우리 나이가 되면 부모님들이 여든 중후반을 너머 아흔을 넘기신 분들도 많이 계시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엊그제도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고 가까이 사는 친구와 조문을 다녀왔다. 친구의 어머니는 여든 후반이셨고 나와 동행한 친구는 아흔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친구의 어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친구는 아들만 내리 다섯을 둔 어머니의 넷째 아들이었고 밝고 싹싹한 성격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상냥한 말투로 보아 어머니에게는 딸 같은 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영강사를 하다가 그마저 그만두고 택배일을 하게 되었다는 그 친구는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배달을 하러 갔다가 우연찮게 오래전 수영을 가르쳤던 수강생 한분과 마주쳤었던 이야기를 했었다. 어느덧 나이가 지긋해진 수강생께서 친구를 먼저 알아보고 선생님이 어째서 이런 일을 하시냐며.. 친구를 붙들고 무척 속상해했던 일화를 털어놓던 그때, 친구는 웃고 있었지만 웃지 못했다. 정작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는 수강생을 앞에 두고 어찌 만감이 교차하지 않았으랴.


나와 동행했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매우 매우 잘했다고 한다. 상무팀에서도 뛰었을 만큼 기량이 좋아서 지금으로 따지면 박태환급이 될 수도 있었는데 신체적인 조건에 한계가 있어 중도에 수영선수를 그만두었단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가 그 친구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혹은 친구의 어머니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에 별처럼 품었던 꿈(그게 업이든 사람이든 다른 무엇이든)을 더 이상 꿈으로 간직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오로지 한 가지 목표만 보고 살았던 이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꿈은 무엇이 있을까.. 다른 꿈이 있기는 있었을까..


시간은 흐르고 시간 속에서 감정은 무뎌진다. 어떻게든 살아지고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낙담하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방황하고 불안해하며 지새웠을 수많은 밤들..


인생에 영광의 순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영광의 순간조차 과거가 될 만큼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지점에서 보면 차곡차곡 쌓인 시간들에 담긴 이야기의 빛깔들이 다르다 해서 영광의 시간보다 어찌 사소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싶었고, 되고 싶었던 꿈을 목전에 두고 돌아서야 했던 사람들은 안다. 그게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은 깨닫는다. 견뎌내는 게 살아있음을 증거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과정에 가슴에 품었던 꿈처럼 반짝반짝하지는 못할지언정 그 꿈 못지않게 소중한 것들로 채워지는 나만의 히스토리가 쓰여지고 있었음을.


지금 친구의 표정은 눈가의 주름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처럼. 문득 친구 못지않게-어떤 면에서는 친구보다 더 애를 끓이셨을 어머니가 지었을 한숨과 어쨌거나 어떻게든 자신의 길을 찾아 꾸역꾸역 살아가는 아들을 보며 한시름 놓았을 어머니의 모습이 친구의 모습 위로 겹쳐진다.


모쪼록 친구의 어머니가 하늘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하면서,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상심했을 친구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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