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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by 쿠키

공기에 밥을 뜨려다 주걱에 투명하게 말라붙은 밥풀떼기 하나를 입으로 떼어 물었다. 씹는 순간 어금니가 뜨끔했다. 밥풀떼기가 어금니 사이에 박혀버렸다. 아뿔싸.. 들어갔으면 나올 법도 한데 도대체 이 녀석은 도무지 나올 생각이 없다. 이쑤시개로 쑤셔보지만 요지부동이다. 안 되겠다. 양치질이라도 해야지.. 밥을 먹으려던 생각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나는 어금니 사이에 꽉 껴서 옴짝달싹 않는 녀석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문득 전날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나는 어떤 엘리베이터에 갇혀있었다. 엘리이터 안에는 나 말고도 몇이 더 있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나만 혼자 엘리베이터에서 겨우 탈출을 했는데 탈출을 하고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두 사람을 각각 들것에 싣고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얀 천에 덮여 있었고, 앞의 사람은 여자인 듯 들것 아래로 늘어진 팔이 가느다랬다. 뒷사람의 팔목은 누가 봐도 남자 팔뚝이었고 무슨 일인지 늘어진 남자의 한쪽 팔이 부르르 떨렸다. 저 사람은 살았나..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는 순간 눈이 떠졌다.


어금니에 박힌 딱딱한 밥풀떼기는 뭘 해도 꿈쩍도 하질 않았다. 나는 왜 밥풀떼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까.. 밥풀떼기나 떼어먹는 쓸데없는 짓을 왜 해가지구.. 거듭거듭 자책할 때 이런저런 이유로 여기저기 아파했던 엄마, 아버지, 친구들이 생각났다. 눈물이 났다. 밥풀떼기만 이에서 나와주면 나는 평온을 되찾을 텐데.. 그러나 현실은 무참했다. 혀끝으로 어금니를 훑고 또 훑을 때 모래알 같은 게 혀끝에 걸렸다. 드디어 나왔나! 쾌재를 부를 때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어림없다는 소리와 함께 절망이 나를 덮쳤다. 나오라는 밥풀떼기는 나오지 않고 이가 부서졌다. 하늘이 노랬다.


나는 주말 이틀 밤낮을 끙끙 앓으며 보냈다. 어금니가 걱정되어 얼마나 혀로 더듬거렸는지 혓바닥 끝이 갈라졌다. 월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날카로운 모래 조각 같은 게 입안에 있었다. 겁이 났다.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다. 부랴부랴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 왈 이가 썩어서 부서진 거란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개월 전 스케일링하러 갔던 동네 병원 의사 선생님은 어금니 색이 조금 이상하다며 한 번은 파노라마인지 뭔지를 찍고 또 한 번은 x- 레이를 찍고 별 이상 없다고 했는데.. 이런 돌파리 같으니라고.. (이런 경우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좀 알려주세요ㅠㅠ)

의사 선생님은 이가 부서지는 부분을 파내고 메꾸면 된다고 하는데 이미 예약들이 많아서 며칠은 기다려야 한단다.


억울했다. 나는 누구보다 양치질과 스케일링에 진심이었다. 이를 자주 닦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니라던 남편의 말이 이제 와서 괜한 말이 아닌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보다 나이도 많고, 이도 잘 안 닦는 남편의 이가 더 멀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도대체 내가 일 년에 한두 번씩 찾았던 병원의 의사들은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치아는 몇 개월 만에 썩는 게 아니라는데.. 그러면 누군가 한 번쯤은 내 이에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알아차렸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나는 며칠을 기다릴 수가 없어 여기저기 치과에 전화를 돌리다 마침 시간이 비어있다는 병원을 찾았다. 이 하나를 때우기로 했는데 그 옆의 이에도 아주 조금 충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충치가 살짝이라도 보이면 마취를 하는 김에 같이 때우자고 한다. 그러마 했다. 어차피 마취를 하는 김에 잇몸치료도 하자고 한다. 그래 하는 김에.. 또 그러마 했다. 사랑니도 빼잔다. 사랑니는 없어도 되고 조금 썩은 것 같단다. 그 옆의 이도 조금 썩은 거 같단다. 마취하고 사랑니 빼는 김에 치료하는 게 좋지 않겠냐 묻는다. 그런 거 같다고 대답했다. 다행히(?) 반대쪽이라 하루에 다 할 수는 없단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한쪽을 치료 하고 났는데 이게 맞나 싶었다. 왜 처음에 찾아간 치과의사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누가 문제일까.. 의문이 든 건 모든 게 끝난 다음이었다.


결과적으로 잘한 건지 아닌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밥풀떼기가 어금니에 박혔고, 그걸 파내려다 이가 부러졌다는 것, 밥풀떼기 때문에 발치 대신 충치치료를 하게 되었으니 잘 된 것인가? 하나를 치료하려다 옆의 치아까지 덤으로 한 번에 하게 되었으니 잘한 건가? 모르겠다. 다만 희한하게도 치아 하나를 건드렸는데 입안의 치아가 모두 뒤틀려버린 느낌이다. 그동안 아귀가 맞았던 치아들이 제각각 따로 노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의사는 내 치아가 고르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그동안 아무런 불편함 없이 물고 씹고 뜯었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맞아지는 것 같긴 한데 원래의 자리를 찾아간다기보다 치아들이 공존을 위해 저희들끼리 타협을 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어쩐지 내 치아들이 미세하게 어긋나 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에 든 생각이다.


참담하다. 겨우 반백년을 살았을 뿐인데..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치아 하나로 이럴진대 앞으로 더 많은 나의 것들이 조금씩 그 기능을 잃어갈 때마다 느낄 상실감이 어마어마하게 무시무시해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치아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하나씩 내어주다 마침내 숨까지 내어주는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견뎌낼 수나 있을까.. 자꾸만 몸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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