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그만두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네가 참 좋아하고 잘하던 일인데.."
운전을 하느라 시선을 앞에 두고도 내 표정은 물론 내 마음까지 보고 마는 친구의 말에 나는 비로소 울컥했었다.
뭐 하나 선명하지 못하고 너저분한 주변에 서서히 잠식당하는 나의 삶이 초라하고 구차스러웠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있는 것조차 힘들고 무서울 수 있음에 놀라면서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이 딱할 만큼 한심하게 여겨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는 어떻게 알았을까. 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친구는 직감적으로 나의 상황을 감지했던 듯하다. 한숨처럼 숨을 내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무감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를 몇 년.. 문득 깨달았다. 내 손에 쥐었다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손에 쥔 모래알들에 불과한 거였구나. 참 별거 아닌 걸 별거라 착각하며 살았구나..
한때는 매우 소중하다 여긴 것들이 볼품없고 하찮게 여겨졌다. 알곡이라 여겼던 것들이 작은 바람에도 휘청이다 날려가는 걸 보고서야 쭉정이인 줄 알았다. 그저 그런 것들에 치이며 살아가기에 인생은 짧고 시간은 유수와 같다는 생각을 했던 건 그즈음이었다.
뭐가 되었든 솎아내듯 정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거기에 있는지 모를 것부터 있으나 마나 한 것들까지 무자비하게 골라내리라.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쉽게 결정해서 쉽게 배출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나니 물건을 선별하는 게 숙제가 되어버렸다. 마치 정리를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틈만 나면 버릴 것을 찾아 온 집안을 뒤적거렸지만 막상 내쳐지는 건 극히 적었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버릴 것을 찾아 집안을 어슬렁거릴 때 친구가 던진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ㅇㅇ아, 네가 진짜 정리하고 싶은 게 뭐야?"
나는 늘 숨이 막혔고, 어느 때는 의식적으로 숨을 쉬지 않으면 안 되리만큼 숨 쉬는 게 자연스럽지 못했다. 늘 머리가 아팠고, 머리가 맑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두통은 묵직한 일상이 되었다. 의식적인 호흡도, 시도 때도 없이 따라붙는 두통도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할 즈음 '왜'라는 말이 저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역할과 위치에 짓눌려, 아니 왠지 그래야만 하는 게 옳다고 믿고 스스로를 가둬둔 채 불쑥불쑥 이어지는 의문에 눈길을 두지 않으려 애썼다. 머릿속에서 엉켜버린 어떤 것들이 - 말이 되지 못한 말들과 겨우겨우 말이 되어 나왔다 하더라도 결국 허공에서 사라지고 말았던 말들이 - 슬픔과 분노가 되어 말문을 조금씩 닫게 만들었다. 알 수 없고, 예기치 못한 일들 속에서 나는 뭔지는 몰라도 뭔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내면의 소리를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러자면 내 삶을 직시하고 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몰랐다.
친구의 물음은 내 정리의 본질을 묻고 있었다. 내가 진짜 정리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나는 그걸 정말 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렴풋이나마 정리의 대상을 알고 있었지만 대면할 자신이 없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외면할 구실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었지만 방법도 용기도 없어 애먼 것들을 골라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정리를 하고 있다, 문제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정리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하고 있긴 하지만..
물건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리하면서 물건을 정리한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무엇이든 정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건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의 정리는 관계 정리에 앞서 필수다. 관계는 그냥 시간을 따라 정리되는 줄만 알았어서 정리 목록에 '관계'를 올렸을 때의 당혹감과 낭패감은 마치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리하고 싶었던 건 바로 그 x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