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가 많진 않아 그래도 구렁이 알 같은 내 월급
1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사회에 나왔다.
후천적 장애, 경증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채.
몸이 아팠지만, 그보다 더 큰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취업’이라는 현실.
매일 구인구직 사이트만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팔 하나, 다리 하나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나에게
세상은 냉정했다.
일자리를 내어주는 곳은 없었고,
아르바이트 면접조차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나는 헤엄치듯 살아냈다.
그리고 어느 날,
빛줄기처럼 하나의 연락이 왔다.
“집 근처 마트인데, 캐셔 면접 보러 오실래요?”
밤 9시가 넘은 시각, 나는 면접을 위해 뛰었다.
내가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면접 장소는 마트가 아니라,
사장님의 자택으로 추정되는 공간이었다.
“수습 기간 동안 급여는 못 주는 거, 이해하지?”
“그리고 진짜 일하려면, 치마도 좀 입고 화장도 좀 하고 와.”
그러더니 내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너무 간절했던 나는
“네, 네…”
앵무새처럼 대답을 되풀이했다.
결국, 그 일은 연락도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실패라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속은 좀 상하지만, 써주는 곳이면 참고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말에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정말,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낭떠러지 끝에 선 마음으로
이전에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던
악명 높은 상담원 일자리에 지원했다.
그 일은,
장애인 취업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은 첫 기회였다.
한 손뿐이었지만
남들처럼 쫓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아졌다.
엑셀 단축키 하나를 치는 것도 쉽지 않았고,
통화 응대 스크립트를 외우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좋은 사수를 만났다.
그 팀은
내 몸보다 내 마음을 먼저 봐주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부족한 만큼,
그만큼 더 열심히 하는 동료와 선배들도 많았다.
나는 배웠다.
그리고 또 배웠다.
그렇게 어느새,
벌써 2년 차 상담원이 되어 있었다.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른 상황에서는 운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지만,
나는 인복 하나만큼은 참 복 받은 사람이다.
한 손으로는 엑셀 단축키 하나 누르기도 쉽지 않은 나.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이며 천천히 업무를 따라가고 있을 때,
새로 배정된 사수는 다정하게 물어왔다.
"단축키 쓰실 수 있으세요? 쓰시기 힘들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까요?"
그 말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할 수 있느냐고 다그치지 않고,
안 되면 함께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그분은 아마 모를 것이다.
하루 네 시간 근무.
급여는 많지 않지만,
나는 처음으로 이 낯선 사회에서 ‘직장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비록 작은 시작일지 몰라도,
이건 분명히 내가 내디딘 아주 귀한 걸음이었다.
가슴 아프고 고단했던 2023년의 끝자락,
그 시간 덕분에
2024년의 시작은 조금 더 활기차고 따뜻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사수의 품에서 벗어나
나 혼자 상담을 맡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전날 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사수에게 털어놓았다.
“선배님… 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요.
첫 통화 운 띄우다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 어쩌죠?
토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사수는 웃으며 말했다.
“안 나와요^^”
“…네에… 그렇겠죠…”
웃긴데, 이상하게 울컥했다.
정말로, 그 말 한마디에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첫 내담자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긴장과 잠 못 이룬 간밤이 무색할 만큼,
큰 에피소드 없이
그저 흘러가듯 지나가 주었다.
목소리는 염소처럼 떨렸고,
나는 그저 앵무새처럼
스크립트만 읽는 형식적인 상담원이었다.
누가 봐도, 초짜 티가 났을 것이다.
입사하고 처음 맡았던 일은,
우리 계열사에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마음고생은 하지 않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들어주고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큰 악성 민원인도 거의 없었고,
전반적으로 고요하고 잔잔한 업무였다.
그런데 그 고요한 물 위에
크게 파문을 일으킨 건,
다름 아닌 내 미숙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