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취업 후 처음 맡은 일은 계열사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복지 제도를 안내하고, 신입으로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충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처음 상담원이 되었던 나에게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이 가장 어려웠냐고 묻는다면, 첫째는 고충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해결은 해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나는 어쨌든 회사의 입장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상담 대상자에 대한 정보는 고작 성별, 이름, 나이, 어느 계열사에 근무 중인지 정도였다.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친구처럼, 혹은 아는 언니처럼 공감하고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초반에는 꽤 혼란스러웠다.
그 시절 나는 사수에게 “왜 우리가 해결 못 해주냐”라고 철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비군 관련 문의가 들어왔다.
나는 예비군을 가본 적이 없었고, 주변에 다녀온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서류나 공가 처리 같은 건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남성이 보건휴가를 모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나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 “제가 신입이라… 알아보고 문자로 답변드려도 괜찮을까요?”
통화를 종료한 후, 남자 선배님께 물었다.
“예비군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서류 제출하면 공가 처리됩니다.”
“그 서류는 어디서 받아요?”
“소집 끝나고 받을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예비군은 공가로 처리되기 때문에 반드시 참석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그냥 “예비군 간다”라고 말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증명이 필요했다.
그 일은 나의 무지와 무관심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깨닫게 해 준 계기였다.
그 이후로는 누가 같은 질문을 해도 당황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포스트잇에 적기 시작했다.
모니터 옆에는 하나둘씩 메모가 쌓여갔고, 어느새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 사이로 내가 쌓아 올린 시간과 배움이 보였다.
문자를 보낼 때도 조심스러웠다.
사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말이었지만, 나는 상담 교육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렸다.
“정말 잘못한 상황일 때만 ‘죄송합니다’를 사용하라.”
실수가 아닐 땐 양해를 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응대라는 교육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보냈다.
> [사원님, 아까 문의하셨던 예비군은 공가 처리가 가능한 부분이며,
예비군에 참석하신다는 내용을 관리자 분께 먼저 말씀드리고
참석 후에는 출석을 증명하는 서류를 받아 사무실에 제출해 주시면
공가로 처리된다고 합니다.
바로 답변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리며,
앞으로는 더 빠르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담이라는 일에서 종종 힘들게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는 ‘무한 사죄’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이곳엔 ‘무한 사죄’의 그늘이 없었다.
오히려 책임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