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토박이인 나에게 표준어는 쉽지 않다.
그래도 상담 일이니 어떻게든 말을 다듬고 고치며 버틴다.
그런데도 가끔은, 말보다 억양이 먼저 튀어나와 사건이 벌어진다.
어느 날, 내담자에게 거주지를 물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요."
나는 순간 잘못 들었다.
"네? 메추리요?"
"... 아뇨, 미. 추. 홀. 구요."
"아, 미추홀구요? 홀구인가요?"
"네, 맨홀 할 때 홀이요."
그리 넓지 않은 지역에서만 살아온 내겐
‘남구’, ‘동구’, ‘북구’ 외의 구 이름은 낯설었다.
그래도 그렇지, 메추리라니…
지금도 ‘미추홀구’만 보면 작고 동글동글한 메추리가 머릿속을 날아다닌다.
또 한 번은 연말정산 문의였다.
내담자가 물었다.
"분할납부도 가능할까요?"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네, 쪼갈라서 내시면 돼요."
"... 네? 무슨 말씀이시죠?"
그 순간, 내 머릿속 뇌 회로가 탁 하고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쪼갈라 낸다’의 표준어는 뭐였더라?
머리를 더듬다가 나온 말은 이랬다.
"그… 노나 내셔도 되십니다."
"... 나노가 어쨌다고요?"
이 상담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은 나도, 내담자도 아니었다.
그 통화를 다시 듣고 녹취를 문서화해야 했던 동료 직원.
그날, 통화 시간이 길다는 피드백을 들었고
모니터 너머의 내 얼굴은 분명히 붉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번 직장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파주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의만 열렸다 하면, 내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사투리 통역사 역할을 자처했다.
"얘 지금 이 말하려는 거예요."
"아, 그 말이었어?"
몇 번이고 되물어질 때면
머릿속 퓨즈가 끊기는 듯한 아찔한 정적이 흐른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고, 말보다 땀이 먼저 난다.
그럼에도 나는,
사투리를 고치지 않는다.
말투가 곧 나 같기도 해서.
불편한 일은 있어도,
사투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실수는 실수로,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넘긴다.
가끔은 반대로,
내가 통역가가 되기도 한다.
경기도에 사는 회사 동료가
우연히 경상도 거주 내담자와 통화를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상담이 끝난 뒤, 그 동료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녹음 좀 들어줄래요? 욕하신 줄 알았어요..."
내용은 교통 안내였다.
근처 횡단보도에서 정차한다고 했더니,
내담자가 이렇게 되물었다.
"신호등이 천지삐까리로 있는데, 언놈인데요?"
표준어로 번역하자면 이렇다.
“사방에 신호등이 너무 많은데, 그중 어느 쪽이라는 건가요?”
사투리를 몰랐던 동료는
순간 당황해서 말이 막혔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설명해 줬다.
"‘언놈인데요’는 ‘어느 놈인데요’, 그러니까 ‘어느 건데요’란 말이에요."
이상하게도,
경상도 상담원인 나에겐 경상도 내담자는 거의 오지 않고,
경기도 상담원에게는 경상도 내담자가 가곤 한다.
무슨 시련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