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일 공개 수업 오실 거예요?”
6학년인데 꼭 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인데 꼭 와야 해요.”
에세이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모임은 12시까지이고 공개수업은 12시 시작이었다. 잠시도 빠지고 싶지 않은 모임이었지만 30분 일찍 자리를 떴다. 글쓰기 동무들의 한 작품이라도 더 읽고 싶은 마음뿐 아이의 공개 수업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수업 시작 전 교실 밖에서 대기하다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어떡해요.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공개 수업이에요. 넘 아쉽네요.”
“네. 그렇네요.”
올 계획이 없었는데 틈을 내서 겨우 왔다는 말은 삼켰다.
교실 뒤 스무 명쯤 되는 학부모들이 재빨리 자녀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서 있었다. 아이들의 뒤통수를 보며 내 아이를 찾아보았지만 어디에 앉았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저기 있네요.”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한 학부모가 알려주었다. 내 아이의 머릿결이 저랬었나. 고개를 돌려 알은체하는 아이를 보니 내 아이가 맞았다. 작고 동글 거리는 얼굴이 아직 또래들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안심하는 표정을 보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카프카의 변신을 가지고 독후 수업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만큼 똘망해 보이는 선생님의 또렷한 목소리에 나도 학생처럼 정신을 차리고 수업에 임했다.
“어머님 만약 우리 아이가 그레고르 잠자처럼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선생님은 친절하게 한 분 한 분 학부모를 찾아가 질문했다. 여자아이의 엄마가 말했다.
“예쁜 유리병에 넣고 세계 여행을 다닐 것 같아요.”
엄마의 대답에 아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오, 대단한 생각이다.’
또 다른 엄마는 아들을 방에 가둬 놓는다고 했다. 그러고는
“가둬놓고 공부시킬 겁니다.”
왁자한 웃음이 교실에 퍼졌다. 아들은 어이없어했어도 큰 웃음을 준 엄마 말에 기뻐했을 것이다.
만약 내 아이가 하룻밤 사이에 벌레가 되어 버린다면 난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내게 질문이 들어왔다.
“전 아마도.. 방생해줄 것 같아요.”
“그럼 바꿔서 엄마가 벌레가 된다면 아이는 엄마를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음.. 아이도 저를 방생해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선생님은 자유를 추구하는 모녀라 결론짓고 수업을 이어갔다.
정말로 내 아이라면 그랬을 것 같은데 답을 들은 아이 얼굴이 나와 다른 생각인 듯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너라면 엄마 벌레를 어떻게 했을 것 같은지 물었다.
“매일 깨끗하게 닦아 줄 거야. 바퀴벌레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가면 죽는대.”
바퀴벌레의 습성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더러운 ‘나 벌레’를 매일 닦아주며 함께 살겠다고 했다.
잠자리에 들며 낮에 있었던 이 일을 다시 떠올렸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결국 몸이 썩어 죽었다. 벌레는 돈을 벌어 오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울 수도 없는 데다 아무래도 흉측하니까. 게다가 벌레로 변한 아들은 아들이 아니었다.
벌레가 되면 왠지 자유롭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우린 둘 다 벌레라면 끔찍하게 생각하기에 ‘아이 벌레’는 나를 위해 떠날 결심을 할 테고 ‘나 벌레’ 역시 아이를 위해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서로를 도와주는 거라 여길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이는 징그러워하는 벌레의 몸을 매일 닦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엄마와 끝까지 함께 살 거라 말했다. 벌레여도 엄마니까.
내가 나이가 더 들어 어느 순간, 지금처럼 가족에게 저녁을 챙겨 주지 못하고 자식의 고민을 상담해 줄 수도 없으며 나란 사람이 누군지도 잊어버리게 될 때, 그야말로 그레고리처럼 흉해 보일 때, 매일 아침 아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따뜻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걸 상상해 본다. 그걸 바라진 않는데도 옆에서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가만, 제주도에 계시는 어머니가 팔순이 멀지 않았다. 훗날, 나는 과연 아프신 어머니의 몸을 닦아주며 끝까지 함께 있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한 번쯤 그런 말을 흘려볼까.
“엄마가 거동 못하게 되면 내가 매일 엄마 몸을 깨끗이 닦아줄게. 우리 엄마니까.”라고.
과연 어머니는 자신이 바라는 걸 솔직하게 말씀해 주실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