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자, 우리
어젯밤 잠을 설친 탓에 몽롱한 상태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알림이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응? 광고인가, 내가 잠이 덜 깼나?'
바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꿈이 아니었다. 합격을 축하하는 이메일이 와있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와, 작가라니! 호칭이 정말 근사하다. 브런치 작가는 다른 사람의 명함으로만 생각했는데 나도 새로운 명함을 갖게 되었다. 이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2023년이 시작되면서 내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던 시간들을 이제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보자', '온전한 나로 살아가 보자'라고 생각했지만 당황스럽게도 그게 뭔지 몰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국민학교 5학년때 담임 선생님은 체육을 담당하셨다. 가끔 운동부 감독으로 대회에 참가하실 때는 학교에 출근하지 않으셨다. 바쁜 선생님은 다른 반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학교 행사를 챙기지 못하셨다.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글짓기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반에서 몇 명씩 참가할 수 있는 대회도 기간 내에 챙기지 못하고 날짜 지난 대회 안내문만 덩그러니 놓여있곤 했다. 어느 날인가 선생님이 책상에 A4용지 한 장을 던져두셨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던 나는 청소를 하다가 슬쩍 읽어 봤다. 독후감 대회를 알리는 안내문이었다. 기간을 확인하고 독후감을 써서 제출했다. 내성적이던 탓에 선생님께 직접 드리지도 못하고 하교하는 시간에 책상 앞에 조용히 올려두기만 했다. 선생님이 그걸 확인하시는지 복도에서 지켜보면서. 아주 오래된 기억 속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비평준화 지역 고등학교 입시를 치를 때 논술 시험으로 학과 성적을 만회했던 기억, 방송반에서 활동하며 방송 원고를 써주던 기억, 친구들에게 손 편지를 자주 보냈던 기억들이 함께 떠올랐다.
나 여전히 글을 쓸 수 있을까?
너무 오래된 기억만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나는 그해 2월 글쓰기 강좌에 등록하고 수강생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잘 쓰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내 글은 너무 미숙했다.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일기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글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 검열에서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걸 써도 괜찮을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내가 가진 능력보다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도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글은 나 자신과 온전히 마주 하는 일이다. 과거에 이해하지 못한 내 행동, 모호하게 방치하고 지나버렸던 내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펼쳐 보는 일이었다. 아프고 애잔하고 후회되는 감정들을 털어내고 닦아 주고 다독여 주는 일이었다. 지나치게 엄격했던 나에게도 따뜻하게 손 내미는 일이었다. 그렇게 과거의 나와 대화하고 이해하며 나를 알아가게 되었다.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고 이전보다 나와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어느새 단단해지는 내면을 느끼고 있었다.
내 안에도 나를 위한 방이 있었다.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우고 나니 한 걸음 나아가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나를 표현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었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되는 일이었다. 때론 글 쓰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에서 내 글을 쓴다는 게 잉여로운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공간에 내 목소리가 담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용기 내어 자신을 표현해 보길 바란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때론 두려울 수 있지만, 그만큼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시도하고 도전하며 살아가고 싶다.
"잘 지내자, 우리"